찬자 미상이고 현재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이나 체재는 알 수 없다.
『삼국유사』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조에서 낙화암(落花巖)과 의자왕(義慈王)의 죽음에 대하여 설명할 때 『백제고기』를 인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용된 내용은 부여 낙화암의 유래에 대하여 의자왕과 후궁들이 나당연합군에게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모두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부분에서 『삼국유사』의 찬자인 일연(一然)은 『구당서(舊唐書)』 백제전(百濟傳) 등을 이용하여 의자왕은 당(唐)에서 죽었음이 확인되므로 자살한 것은 후궁 뿐이라고 하여 그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고 있다.
만약 백제 멸망 당대나 멀지 않은 시기의 자료라면 이러한 오류가 생기기 어렵다고 생각되므로, 시기적으로 상당히 후대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이러한 오류는 이 설화를 통해 백제 멸망의 비장감을 극대화시키려는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고 썼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에 따르면, 해당 부분은 백제 부흥을 표방한 견훤이 의자왕의 죽음을 신라의 경애왕(景哀王)과 대비시켜 신라에 대한 보상적 차원에서 논급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럴 가능성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인 근거자료가 없으므로 『백제고기』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