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백제에서 좌평(佐平)들이 모여 정무를 논의하던 회의.
개설
내용
회의의 구체적인 모습을 전하는 사료로는 『삼국유사』 남부여 · 전백제조가 있다. 그에 따르면, 좌평을 선임할 때에는 후보자 3~4인 중 1인을 선출한다고 하는데, 귀족들의 합의제적 전통이 남아 있는 모습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또 왕이 좌평의 인사에는 함부로 개입하지 못하고 사후 승인만 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회의의 구성원은 좌평 관등 소지자인데, 5세기에는 3명이었다가 6세기에는 5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참여하는 인원의 증가는 좌평 간의 담합을 방지하고 좌평 1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정도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백제의 회의체에 대해서는 주로 제솔회의(諸率會議)가 강조되어 왔으나, 그것은 좌평회의보다 참가자 수가 많고 폭넓은 의사 수렴을 위한 것이어서 비상시에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전체회의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일상적인 정무를 처리하기에는 부적절하므로 소수의 인원이 빈번하게 모여서 결정할 수 있는 좌평회의와 같은 형태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동아시아 속의 백제 정치제도』(정동준, 일지사, 2013)
- 『백제정치사연구』(노중국, 일조각, 1988)
- 「백제 사비시대 정치사 연구」(김주성,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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