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열성의 구체적인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오늘날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악지(樂志)에 따르면, 가야금으로 유명한 우륵(于勒)이 성열현(省熱縣)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642년 백제가 대야성(大耶城)을 비롯한 신라 서부의 40여 성을 차지하자, 644년 신라는 반격에 나서 가혜성(加兮城: 고령)·성열성(省熱城: 의령)·동화성(同火城: 구미) 등 7성을 공격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역주 삼국사기』4 (정구복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백제·신라의 전쟁과 대야성」(김창석, 『신라문화』 3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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