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98년 제주도에서 방성칠 등이 가혹한 세제 징수의 시정 등을 요구하며 일으킨 민란.
역사적 배경
경과
3월 2일 민란 지도부는 “제주 · 대정 · 정의의 세 군수를 혁파하고 환자〔還上〕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의 방문(榜文)을 성 내에 붙였다. 또한 각 마을에 전령을 보내 도내의 모든 배를 뭍으로 끌어올려 묶어놓아 육지와의 연락을 두절시켰고, 호고(戶庫)를 열어 쌀을 풀고 무기고의 창과 검을 꺼내어 중민을 무장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성내의 양반들은 5일 조천으로 도망하여 그곳의 양반들과 합세하여 토벌군을 구성하였지만, 방성칠 등의 선제공격을 받아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이후 방성칠 등 지도부는 장기 전략을 모색하면서 무너진 성과 무기를 보수하고 예상되는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결과 및 의의
참고문헌
- 『속음청사(續陰晴史)』 상·하(복각본)(김윤식, 국사편찬위원회, 1971)
- 「1898년 제주 방성칠란고」(오세창, 『한국민족운동사연구』 21, 한국민족운동사학회, 1999)
- 「남학당(南學黨)의 활동과 방성칠란」(조성윤, 『제주도연구』 3, 제주학회, 198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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