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행(吳成行)은 1921년 7월 25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39년 산시성〔山西省〕 심현(心縣)에서 중국군사위원회 제18 집단 군사령부에 소속되어 항일전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1940년 9월 15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 김구(金九) 명의로 발표된 한국광복군 선언문에는 “중화민국 항전 4개년에 도달한 이때 우리는 큰 희망을 가지고 우리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할 시기에 왔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중화민국 최고 영수 장제스〔蔣介石〕 원수의 한국 민족에 대한 원대한 정책을 채택함을 기뻐하며 감사의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우리 국가의 해방운동과 특히, 우리들의 압박자 왜적에 대한 무장투쟁의 준비는 그의 도덕적 지원으로 크게 고무되는 바이다. 우리들은 한중 연합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계속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극동 및 아시아 인민 중에서 자유 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선언문 발표 이틀 뒤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서 중국 제34 집단군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제4단 내에 한국청년훈련반(약칭 한청반)을 특설할 때 이곳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2기로 수료하였다. 한청반은 전지공작대 시절 중국 국민정부 후중난〔胡宗南〕 사령관의 협조를 얻어 설치한 곳으로, 제2지대가 성립된 후에도 한동안 그곳에서 교육훈련이 실시되었다.
1942년 4월에는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 제3분대장에 임명되어 초모(招募) 공작 활동과 적의 정보 수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는 광복군 제2지대본부 부관으로 배속되어 복무하였으며, 당시 계급은 중위였다. 1945년 8 · 5광복 때까지 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