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3징모처 위원으로 선임되어 초모 활동 및 대적 선전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을 때 제3징모처 위원 겸 훈련 조장에 임명되어 장시성 진화〔金華〕에서 대적 선전 방송, 정보 수집 및 일본군 포로 심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때 한국광복군에서 마련한 ‘광복군 임무’(① 우리들의 분산한 역량을 독립군에 집중하여, 전반적 조국 광복 전쟁을 전개한다. ② 중국의 항전에 참가 및 중국 항일군과 연합하여 일본군을 박멸한다. ③ 국내 민중의 무장 반일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도한다. ④ 정치 · 경제 · 교육 등에서 균등한 신민주국가를 건설할 만한 무력적 기간을 마련한다. ⑤ 평화와 정의를 지지하는 세계 각 민족 및 인류를 저애하는 사물을 일체 소탕한다.)를 충실하게 전개하는 활동을 하였다.
또한, ‘적구내(敵區內) 동지 동포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적어 동포들에게 광복군 선전 활동의 취지를 알렸다. ‘적구내 고함’은 “우리는 신성한 단군부터 위대한 자손으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고급 문화를 향유한 민족의 하나이며, 이민족에게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혁명의 대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민족의 승리를 위해 한국광복군으로 모이라.”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1942년 6월, 왕징웨이(汪精衛)가 세운 일본 제국주의 괴뢰국인 화평반공건국(和平反共建國) 군대가 반정 공작을 전개할 당시 저장성〔浙江省〕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 끝에 큰 부상을 입고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한시준, 『한국광복군 연구』(일조각, 1993)
- 『독립유공자공훈록』 5(국가보훈처, 1988)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4(고려서림, 1983)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5(탐구당, 1968)
-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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