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은 이해평(李海平), 이재두(李在斗). 경기도 시흥 출신. 1930년대 말에서 해방되기까지 중국의 관내(關內)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원과 광복군(光復軍)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8년 가을 임시정부가 유주(柳州)에 머무르고 있을 때 나월환(羅月煥), 이하유(李何有), 김동수(金東洙), 김인(金仁), 노복선(盧福善) 등 및 중국인 50여명과 함께 선무공작대를 편성하고 중국군의 항일전선에서 선무공작을 전개하였다.
1939년 10월 중경(重慶)에서 중국의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생 등 30여명과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고 동대의 공작조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해 겨울 공작대가 서안(西安)으로 이주할 때, 김동수(金東洙), 김천성(金天成) 등 7명과 함께 산서성(山西省) 등지로 파견되어 호종남(胡宗南) 직속의 산서지구 유격대와 합류해 정보수집·적정탐색·초모공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9월 광복군이 창설되고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광복군의 제5지대로 편입될 때 이재현은 지대장 나월환 휘하의 간부에 선임되었다. 이재현은 5지대가 본부를 둔 서안에서 총사령부의 호위와 장병의 훈련에 종사할 뿐만 아니라 멀리 하남성(河南省), 하북성(河北省) 등지에 나가 초모·선전·정보수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5지대가 광복군의 2지대로 재편되자 이재현은 공작조장 겸 정훈조 부조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복군 2지대가를 작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1944년 4월 광복군과 미국 OSS의 합동훈련시 무전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1945년 국내정진군의 본부요원으로 국내 침투공작을 대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이재현의 공적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