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국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중국 운남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로 건너가 정의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김창림(金昌林), 김창식(金昌植)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1928년 11월 9일
출생지
평안북도 벽동
대표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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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원국은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망명하여 운남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만주로 이동하여 1925년부터 정의부에서 활동하였다.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중 중국 법정에 회부되어 1928년 여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 운남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로 건너가 정의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김원국(金元國)은 1903년 평안북도 벽동군 군부면 동하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창림(金昌林) · 김창식(金昌植)이다.

주요 활동

1919년 3‧1운동 후에 중국 운남군관학교(雲南軍官學校)를 졸업하고, 이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정의부(正義府)에서 활동을 시작한 김원국은 무장투쟁을 전개하며 일본군 및 친일파 처단 등에 나섰다.

1925년경부터 정의부 6중대 2소대장을 맡은 김원국은 퉁화현〔通化縣〕 쾌대모자(快大帽子)에서 친일파 신한철(申漢哲) 등을 사살하고, 친일 단체인 상조계(相助契)를 토벌하였다. 1926년 9월 14일 대원 서상진(徐尙眞) · 김용호(金龍浩) · 심영준(沈永俊) 등과 함께 중국 보갑대(保甲隊)에 체포되어 1927년 3월 9일 중국 다롄〔大連〕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1928년 11월 9일 여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유공자공훈록』 12(국가보훈처, 1996)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8(국사편찬위원회, 1973)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수호회, 1956)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5)
집필자
황선익(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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