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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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김문공사라는 잡화상을 경영한 상인.
이칭
본명
김정문(金正文), 김정문(金正文)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2년
사망 연도
1978년
출생지
경기도 개성부(현 개성특별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시문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김문공사라는 잡화상을 경영한 상인이다. 1892년 개성에서 태어나 1916년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대한교민단에서 활동하는 한편, 김문공사를 운영하며 '상인독립군'이라 불렸다. 광복 후에도 상하이에 남아 한인들과 교류를 이어갔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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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김문공사라는 잡화상을 경영한 상인.
인적사항

1892년 경기도 개성부에서 소작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정문(金正文)이다.

주요 활동

1898년부터 1902년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02년에 어머니, 1903년에 아버지를 잃고 평안남도 강서군의 누이 집에 머물렀다. 이후 다시 거처를 잃고 정원봉(鄭元奉)의 집에서 점원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30원을 들고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1916년 상하이에 도착한 후 구두 수선이나 인삼 행상 등을 하며 생계를 해결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독립신문사에서 식자공이나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독립운동가들과 인연을 맺었다. 1922년 선우훈이 운영하던 금강산호(金剛山號)를 인수한 후, 상호를 김문공사(金文公司)로 바꾸고 잡화점을 열었다. 한국에서 인삼과 과일 등을 들여와 판매하였으며, 음료와 제과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면서 꾸준히 상점을 키워나갔다. 1924년경 김문공사는 자본금 1만 원 규모의 업체로 성장하였다.

김시문은 상하이 프랑스조계 중심지인 하비로에서 사세를 넓히며 임시정부 산하 대한교민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교민단이 주최하는 각종 집회, 회의, 기념식 등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1926년에는 교민단의 15인 의사원 중 한 명으로 당선되었다. 한편, 1929년 창립한 상해고려상업회의소(上海高麗商業會議所) 등에서도 활동하였다. 상업회의소를 중심으로 모인 상하이 한인 경제인은 1930년대 중반 이후 일제에 협력하기도 하였다. 1942년 김시문은 ‘황군감사위문대응모자명부(皇軍感謝慰問袋應幕者名簿)’에 이름을 올렸다.

광복 후에는 김문공사를 운영하며 상해한국교민협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상해한상총회(上海韓商總會)에 가입하여 상하이를 대표하는 한상으로 역할하였다. 김시문은 ‘총대 없는 상인독립군’이라 불렸으며, 그의 집은 한때 ‘한국총영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만큼 김시문은 상하이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49년 제2차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겪으며 그의 일가는 혼란을 겪었다. 맏아들 김희원은 1949년 9월 귀국하였지만, 그 외 가족은 상하이에 남거나 홍콩에서 살게 되었다. 김시문은 상하이에 거주하면서 한인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그곳에서 박은식, 신규식 등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지켜내며, 1990년대에 유해 봉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중국에서 북한 국적을 갖고 있던 김시문은 1968년 국적을 포기하여 무국적 상태가 된 후, 1968년 홍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76년 5월 28일 귀국하였다. 6개월간의 조국 방문을 마친 그는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1978년 3월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그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시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광재, 『어느 상인독립군 이야기: 상해 한상 김시문의 생활사』(선인출판사, 2012)

논문

김광재, 「‘상인독립군’ 김시문의 상해 생활사」(『한국민족운동사연구』 64,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0)
집필자
황선익(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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