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국민승리21은 1997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대통령 후보를 추대하기 위해 1997년 10월 26일 결성한 좌익 성향의 정당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진보정치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주축이 되어 창당하였으며, 대통령 후보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추대하였다. 대통령 선거 결과 건설국민승리21(국민승리21)은 예상과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30만 6026표로 1.19%를 얻는 데 그쳤지만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의 정치 세력화를 목적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진보정치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 주축이 되어 ‘건설국민승리21(建設國民勝利21)’을 결성하였다.
전국연합은 1997년 2월 2일 “민족 민주 진영의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6월 14일 “공동의 선거 기구인 가칭 민주개혁국민연합을 제안하고 여기에 민주 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 후보’를 추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노총도 같은 해 3월 27일 “노동자가 적극 참여하고 각계 각층의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세력과 함께하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실현하고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철저히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 건설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어서 7월 24일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대선) 후보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민주 세력과 연대하여 공동 선거 대책 기구 구성”에 적극 나서기로 결의하였다.
이어서 진보정치연합도 7월 6일 진보 정당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적극 참가하며, 국민 후보 운동을 전개한다는 대선 방침을 결정하였다.
1997년 8월 18일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 재야 · 노동 단체는 12월의 대선을 겨냥하여 독자 후보를 내기 위해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국민승리21(가칭) 건설과 국민 후보 추진을 위한 선언자 대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9월 7일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국민승리21(가칭) 추진위원과 준비위원 등 2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발족식을 거행하고, 국민 후보로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을 추대하기로 공식 결의하였다.
1997년 10월 26일 국민승리21은 결성대회를 열고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통령 후보로 공식 추대하였다. 국민승리21은 이날 창립 선언문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권영길 후보는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선에 출마하였다.
같은 해 11월 10일 권영길 후보는 평생 고용 보장과 퇴직금 완전 보장, 사회복지 예산 20% 증액, 국가보안법 철폐와 안기부 폐지, GNP 7% 교육 재정 확보와 11년 무상 교육, 군 복무 18개월로 단축과 향토예비군 폐지, 민족사 정립을 위한 진실규명위원회 설치 등 10대 핵심 정책 공약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2월 2일에는 30대 재벌 총수의 퇴진을 촉구하고 ‘일자리 지키기 국민 항쟁’을 선언하였다. 그는 이날 법정 근로 시간인 주 40시간 단축, 고용안정특별법 제정, 정리해고특별법 도입 등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18일 실시된 15대 대통령 선거 결과 권영길 후보의 득표는 예상과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30만 6026표인 1.19%에 그쳤다.
진보 진영의 정치 세력화 기반 구축을 시도했던 국민승리21의 정치 실험은 기성 정치권의 두터운 벽에 부딪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승리21은 이전의 명망가 중심의 진보 정당 운동에서 벗어나 민주노총 등 민중 대중 조직의 공식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운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선거 실패가 정당 사멸을 의미한 과거의 경험과 달리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