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76년 10월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등이 반유신 민주화와 민족 해방을 목표로 결성한 비합법 지하 조직.
설립 목적
변천 및 현황
남민전은 지식인층과 혁신계 운동 관계자들, 청년 학생 운동 출신자, 노동자 · 농민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지역적인 기반도 서울 · 경인 지역, 대구 · 영남 지역, 호남 지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남민전은 유신 체제에 대한 유인물 배포 투쟁, 독점 재벌 및 부유층에 대한 ‘응징 투쟁’을 전개하였다. 유인물 배포 투쟁은 1977년 1월 민투를 정식으로 발족하면서 벌였던 투쟁을 비롯하여 총 7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독점 재벌 및 부유층에 대한 ‘응징 투쟁’은 혜성대와 전위대를 통해서 총 3회에 걸쳐 수행되었다. 1회는 ‘봉화산작전’으로 구자영의 집을 대상으로, 2회는 ‘GS작전’으로 종로2가 소재의 금은방 '보금장'을 대상으로 혜성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GS작전은 이 작전에 참여하기로 한 성원이 불참하여 실패로 끝났는데, 1979년 3월 실패 원인을 분석하면서 혜성대를 상설적인 소수 정예 부대의 전위대로 확대 · 개편하였다. 전위대로 개편한 후 제3회 ‘땅벌작전 1호’로 불린 동아건설 사장의 집을 습격하는 작전이 이루어졌으나 이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남민전은 중요 간부의 피검으로 몇 차례의 비상사태가 있었다. 1976년 초 남민전 발기자의 한 사람이었던 김병권이 구속되었으며, 1977년 초 1월 투쟁의 수사 과정에서 민투의 조직책이었던 이재오가 피검되었다.
1979년 4월에는 ‘땅벌 1호작전’ 과정에서 이학영이 체포되었으며, 안용웅의 도일과 관련하여 임동규가 구속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검거 사건에도 남민전은 조직 보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결과 및 평가
체포된 이재문은 1981년 11월 22일 감옥에서 사망하였고, 신향식은 1982년 10월 8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안재구, 임동규, 이해경, 박석률, 최석진 등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김남주, 이수일 등은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1988년 형 집행 정지 등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2006년 3월 13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최석진, 박석률, 김남주 등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조희연,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한울, 1993)
논문
- 조희연, 「1970년대 조직사건에 대한 연구: '남민전'을 중심으로」(『성공회대학논총』 5, 성공회신학대학, 1991. 9)
- 안병용, 「남민전: 유신 말기 대표적 '반독재 · 반제' 지하투쟁조직에 대한 본격 조명」(『역사비평』, 역사문제연구소, 1990. 8)
인터넷 자료
- 네이버 기관 단체 사전(http://ter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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