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에는 해인사의 말사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원년(839)에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진감혜소(眞鑑慧沼)가 이곳 두류산 중턱에 보월암을 창건(840)하였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민애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민애왕이 그를 스승으로 봉하여 진감선사(眞鑑禪師)라고 하였기에 그가 머물던 암자를 국사암(國師庵)이라 칭하였다. 일찍이 의상의 제자 삼법(三法)이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는 혜능의 머리를 취해 왔는데, 진감이 육조대사정상탑을 세워 그 안에 봉안하고 영당(影堂)에 모셨다. 이 탑 속에 봉안하고 있다는 정상은 남종선의 태두인 육조 혜능의 머리를 실제로 잘라와 모셨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법 정신의 당체인 머리 부분을 해동 신라로 옮겨와 모심으로써 이 땅의 선법이 그의 정수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이 탑은 현재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 선원의 금당에 봉안되어 있다. 국사암에 관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711년(숙종 37)에 의삼이 홍은 · 연민과 함께 1714년까지 전각을 짓고 푸른 기와를 얹어 4존상을 봉안하였는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 · 중수하였다. 절의 목조여래좌상 · 석조석가여래좌상 · 석조미륵보살좌상 · 석조십칠나한좌상 · 석조제화갈라보살좌상 등은 모두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최근인 1983년에 문수전 · 인법당 등을 새로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별한 국가유산은 없다. 절 문 앞에는 혜소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천 년이 넘는 느릅나무로 자라 사천왕수(四天王樹)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