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영수암이라고도 불렀다. 이 절의 전신은 신라 말에 범일(梵日) 국사가 창건한 구룡사(九龍寺)였다고 하지만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는 않는다. 임진왜란 때(1592) 불탄 뒤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37년에 중창하였다. 최근에 폐사된 절터에서 앞쪽으로 터를 옮겨서 중창하였다. 옛 절터에서 옮겨온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와 이수는 1974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부도편과 석탑 옥개석, 석조여래입상 등이 있는데 이들 유물은 모두 고려 전기 때인 11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연화문을 새긴 팔각원당형 부도의 석조대좌는 인근에 있는 성주산문 고승의 부도로 보인다. 유물들로 볼 때 이 절은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에는 귀부와 이수 위에 비신을 새로 만들어 세워 형상을 회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