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0월 피전책(避戰策)에 따라 안도현으로 이동 중이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부대는 일본군이 계속 추격해 오자 일본군과 일전을 벌이기로 하였다. 이에 백운평 인근 골짜기 길목에 매복하여 일본군을 유인하기 위한 허위 정보를 흘렸다.
1920년 10월 21일 오전 9시경 일본군 야스가와(安川)소좌가 지휘하는 선발 보병 1개 중대가 매복한 지점까지 접근하자 독립군들은 기습적으로 일제히 사격하여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일본군은 야마타(山田)가 지휘하는 본대의 증원을 받아 계속 독립군을 공격하였으나 독립군이 지형적으로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이후 매복에 참여하였던 북로군정서 부대는 작전에 따라 갑산촌으로 철수하였다. 일본군은 독립군을 추격하고자 하였으나 삼림 때문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백운평전투에서 독립군은 일본군 200여 명 이상을 살상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반면 일본군은 최초 교전 사실을 보고한 전보에서는 독립군의 사상자가 1명이라고 하였으나 이후 보고에서는 16명으로 확대하였다. 또 일본군 피해는 병 4명이 전사하고, 하사 1명과 병 2명이 부상이라고 하는 등 전과를 허위로 보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