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유허비로 3기가 있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정몽주는 이인임(李仁任) 일파가 주장하는 배명친원(排明親元) 정책에 반대하다가 울주의 언양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여기서 대략 1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중앙 정계에 복귀하였다. 이후 지역의 인사들을 중심으로정몽주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반구대를 포은대라고 명명한 것도 그중 하나이다. 조선 후기인 1712년(숙종 38) 언양 지역 유생들은 정몽주와 이언적(李彦迪),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자 반고서원(槃皐書院)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이 서원은 1871년(고종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이 반고서원 유허지에 포은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허비 3기를 연속하여 건립하였는데, 1885년의 ‘포은대영모비’, 1890년의 ‘포은대실록비’, 1901년의 ‘반고서원유허비실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 유허비는 196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