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년(진평왕 48)에 쌓은 성이다. 『삼국사기』 제사지에 따르면, 신라의 제사체계에서 고허(高虛)는 사량(沙梁)에 있었던 소사(小祀)의 제장이었다. 소사의 제장은 대부분 지역 내 방어와 관련한 진산(鎭山)에 있다. 곧 소사의 제장에 관방시설로서 산성을 구축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만하다.
고허는 신라 초기의 6촌 중 하나인 돌산 고허촌이다. 『삼국유사』 기이편의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따르면, 돌산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가 형산(兄山)에 내려와 사량부(沙梁部) 정씨(鄭氏)의 조상이 되었고, 이곳이 고려시대의 남산부(南山部)에 속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삼국유사』 탑상편 천룡사조에는 남산의 남쪽에 고위산(高位山)이 있다고 전한다. 이곳에 산성터가 남아 있는데 이를 고허성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