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예인수 묘지명은 백제 유민 예인수와 부인 약간씨 부부의 합장 묘지명이다. 백제 유민 예식진의 손자이자 예소사의 장남인 예인수와 부인 약간씨의 합장 묘지명으로 아들인 예적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에 귀의하여 관작을 받은 예식진과 좌무위장구이 된 예소사의 활동과 묘주 예인수의 관력과 생애, 부인 약간씨의 행적, 장례 등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백제 멸망 후 당에서 태어난 백제 유민의 묘지명으로 예씨 가족의 활동과 관력, 혼인 등에 대해서 알려주는 금석문 자료이다. 2010년 서안시 장안구 곽두진 곽두남촌에서 출토되었는데 현재는 서안박물원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정의
백제 유민 예인수와 부인 약간씨 부부의 합장 묘지명.
개설
내용
그러나 예인수 묘지명의 기록처럼 수나라 말에 증조가 백제로 건너왔다는 것은 수긍하기 곤란하다. 조부 예식진이 당에 귀의하여 관작을 받았고, 부친 예소사가 습봉하여 좌무위장군이 되었다는 것과 함께 예인수도 무관으로 당에서 활약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명위장군으로 우효위낭장에 올랐지만,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좌천되었다는 것도 적고 있다. 진주 삼도부 과의, 여주 양천부 과의, 괵주 금문부 절충을 지낸 후 임조군에서 727년에 향년 53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부인에 대한 기록이 묘지의 말미에 있는데, 무장인 수주자사 약간기타의 딸이라고 하였다. 약간씨는 원래 선비족 출신 가문이므로 백제 예씨 가문이 선비족 출신 무장 가문과 혼인한 사례이다. 부인 약간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약간씨는 예인수 사후에 장안 북쪽의 빈주에 있는 장녀의 집에서 살다가 향년 61세로 739년에 세상을 떠났다. 예인수 부부의 무덤은 각기 다른 곳에 있다가 아들인 예적이 750년에 장안성 남쪽 고양원으로 옮겨 합장하였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백제 유민 묘지명의 현황과 가치」(김영관, 『중국 출토 백제인 묘지 집성』,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6)
- 「예인수 묘지명」(최상기, 『 한국고대문자자료연구: 백제(하)』, 주류성출판사, 2015)
- 「백제 유민 예씨일족 묘지명에 대한 단상」(권덕영, 『사학연구』 105, 2012)
- 「중국 발견 백제 유민 예씨 가족 묘지명 검토」(김영관, 『신라사학보』 24, 201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