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대구에서 출생한 이영희는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이영희는 40대부터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해, 전 세계를 무대로 한복과 한복을 모티브로 한 패션을 선보이며 한복의 패션화에 앞장섰다. 47세에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염직 공예학을 공부하고, 동덕여자대학교 의상 디자인학과의 겸임 교수를 역임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 의상학과에서 후학의 교육에도 헌신하였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 · 폐막식 한복 디자인을 마지막으로 그해 5월에 생을 마감하고 그간의 공헌을 인정받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전업주부였던 이영희는 30대 중반 부업으로 실크 솜 이불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불을 꾸미고 남은 실크 이불감을 가지고 한복을 만들어 주변에 판 것이 계기가 되어 1976년 40살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영희 한국 의상’을 개업하며 본격적으로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1년 신라 호텔에서 첫 개인 패션쇼를 연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300회 이상의 한복 패션쇼를 개최하여 한복 디자이너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갔다.
1993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서 첫 번째 쇼를 연 이후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총 24회 참여했으며, 2010년 이후 3회의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 참가하였다. 천연 염색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색채 감각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1995년 파리 프리미에르 비죵 전시 칼라 선정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2000년 뉴욕 카네기 홀 패션쇼 이후 2004년 뉴욕 맨해튼에 ‘이영희 한국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07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12벌의 한복을 영구 소장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HANBOK’이라는 고유명사를 인식시키고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활동의 선봉장이 되었다.
2001년 평양 초청으로 ‘이영희 민속의상전’을 열었다. 2005년 ‘PUSAN APEC 정상회의’ 21개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하였고, 2000년부터는 국내 패션 디자이너로서 서울 컬렉션에 참가하였다. 2015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40여 년의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을 회고하는 ‘이영희 전(展)’을 열었으며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 · 폐막식 의상 감독으로 참여하였다.
사후 2019년, 유족들은 그녀의 고향인 국립대구박물관에 8,000여 점이 넘는 의상과 소품을 기증했으며, 주요 활동 무대였던 프랑스 파리 기메(Guimet) 국립 동양 예술 박물관에 수백여 점의 작품을 기증하였다.
이영희의 대표 저서로는 『파리로 간 한복쟁이』(디자인하우스, 2008)와 『옷으로 지은 이야기』(디자인하우스, 2016)가 있다.
1994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에서 맨발에 저고리 없이 한복 치마만을 활용한 이브닝 드레스를 선보였다. 다음 날 프랑스의 일간지인 『르몽드』의 수석 패션 기자인 로랑스 베나임은 “바람을 옷으로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데 모은 옷”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바람의 옷’이라는 수식어가 생겨났다. 이 드레스가 국내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1993년 황금바늘상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1996년 일본 니카타 문화제에서 아시아 최고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1997년 서울 패션인 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 제1회 산업 디자인 진흥대회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2008년 구글 아티스트 캠페인에서 세계 60인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2009년 문화훈장(옥관)을 수여받았고, 2018년 문화훈장(금관)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