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는 한국의 전통 발효 음식인 김치의 주재료로 이용되는 주요 채소이며, 세계적으로는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 많이 소비되는 채소이다. 배추의 품종은 결구(head formation) 정도에 따라 결구, 반결구 및 불결구의 세 가지로 나누고, 결구하는 품종은 다시 결구 형태에 따라 포합형(joined-up type), 포피형(wrapped-over type) 및 권심형 세 가지로 나눈다. 결구한 잎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엽수형과 엽중형으로 나눈다.
개성배추는 초장(草長, plant lenth)이 40㎝ 내외로 ‘서울’, ‘직예’, ‘산동’ 등에 비하여 현저히 큰 반결구형 배추이다. 잎의 색은 ‘ 서울배추’보다 진한 녹색이고, 엽맥(중륵)은 두텁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은 편이다. 잎 가장자리에 요철이 심하고 잎 뒷면의 모용(毛茸)은 ‘서울배추'보다 적다. 배추통은 크고 섬유질이 적은 편이며 초자(草姿)는 다른 것에 비하여 크다. 그리고 병과 해충에 대하여 다른 품종보다 강한 편이다.
개성배추는 개성 지방에서 독특하게 발달된 고유의 채종 체계에 의하여 그 종자가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 질이 우수하여 전국적으로 재배되었다. 가을에 배추를 수확할 때 생육 상태가 우수한 것을 엄선한 후 엽신부(葉身部)를 잘라 김장에 이용하고 뿌리 부분을 잘 다듬은 다음 며칠 동안 건조시킨다. 그리고 움에 저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채종포에 옮겨 심어 종자 생산에 이용한다. 채종량은 다까하시[高橋, 1943]에 의하면 1911년에 25㏊에서 122섬 정도, 1941년에는 91㏊에서 470섬 정도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배추가 한국의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인 1236년(고종 23)에 간행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다. 『향약구급방』에 배추는 한자로 ‘숭(崧)’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당시에는 채소가 아닌 약초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채소로서는 16세기에 씌여진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숭채(崧菜)’라고 기록되었으며, 종자는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초에 쓰여진 『한정록(閑情錄)』에는 ‘숭채’와 더불어 배추가 처음 등장하고 김치를 담는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에서는 숭채를 봄에 재배하고 종자를 받아 다시 6월에 파종하는 채종 및 재배법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박제가의 『숭채조(崧菜條)』에는 중국에서 종자를 가져다 심는 것이 좋으며 3년 동안 재배한 후에는 순무가 된다는 내용이 있어 채종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도 배추에 대한 구절이 있는데 3월에 무, 배추를 심고, 7월에는 김장할 무, 배추를 심고, 10월에는 무, 배추를 수확하여 김장하는 내용이 있어 채소 농사가 무, 배추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배추의 재배 역사는 상당히 오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배추는 전국적으로 재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800년대 이전에는 모두 불결구 배추로서 품종 구분 없이 각 농가마다 자가 채종 종자로 재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추의 도입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1800년대 결구성 배추가 중국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당시 채소 재배 기술이 가장 앞선 개성 지방에서 인기리에 재배되었다. 그러나 불결구 배추와는 달리 채종 기술이 확립되지 않아 국내에서 채종할 경우 3년 이내에 품종이 퇴화하여 결구 배추로서의 가치가 없어졌다. 따라서 중국에서 종자를 수입하여 재배해 왔다. 그러다가 1850년대에 비로소 결구성 배추의 채종 기술이 확립되었다. 이때부터 절반 정도 결구되는 반결구 배추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주산지의 채종업자에 의해 종자의 생산도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 지방에서 1800년대 후반에 우량 계통이 개발되어 ‘개성배추’라는 이름으로 재배되었다.
결구성 배추의 채종 체계가 확립되면서부터 집단 선발에 의한 품종 개량이 시작되고 그 결과 ‘개성배추’라는 이름의 반결구성 우량 고유 품종이 1800년대 후반에 육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개성배추’는 1940년대까지 재배되었는데, 일본인 온다(恩田)의 『조선에 있어서의 과수, 채소재배』(1906)에 의하면 개성 지방에서 재배되고 있는 ‘개성배추’는 다른 어느 외국 품종보다 우수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선중앙농회보』 제6호(1907)의 한문 부록에 「개성의 배추 재배법」(久次米邦藏 씀)이라는 기사가 있는데, 그 서두에 “개성의 배추는 조선 채소 중에 왕이라 하기에 실사해 본 즉 그 종류의 선량(善良)이나 그 지질(地質)의 적당이나 그 재배법의 진보가 타의 견줄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1953년 중앙원예기술원(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전신)이 설립되어 보다 적극적인 품종 개량 및 채종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56년에는 ‘청방’ 등 결구형 5품종, ‘서울배추’ 등 반결구형 5품종의 원종을 증식하여 보급종 생산용으로 종묘 회사에 분양하게 되었다. 그리고 농가가 재배할 수 있는 보급종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였다. 중앙원예기술원은 자가 불합성을 이용한 결구형 배추의 1대 잡종 ‘육성에2’에 착수하여 1960년에 최초로 1대 잡종 ‘원예 1호’와 ‘원예 2호’를 발표하였고, 그 원종을 종묘 회사에 분양하게 되었다(원예시험장, 1960). 이것이 효시가 되어 종묘 회사들이 결구형 배추 1대 잡종 품종 육성을 활발히 진행하여 오늘날은 대부분 결구형 배추 1대 잡종 품종을 이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