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배추는 중국에서 들여온 배추 종류로 잎이 뿌리에서부터 포개져 자라며 둥글게 속이 차는 결구배추이다. 재래종 배추와 구분해 중국에서 들여온 배추라 하여 호배추(胡배추)라 한다. 1930년대에는 수확량이 많고 추위에 강한 호배추 재배가 적극 권장되었지만, 호배추는 억세고 김치의 감칠맛이 적고 우거지도 많지 않아 해방 이후까지도 조선 배추가 더 선호되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호배추를 개량한 결구배추 품종이 개발되면서 값싼 호배추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 초반에는 호배추로만 김장 김치를 담그게 되었다.
배추는 원산지가 중국이며, 우리나라 문헌에는 고려시대의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1236)에 처음 나온다. 배추는 원래는 구(球)를 형성하지 않고 상추처럼 잎만 자라는 불결구종이었다. 결구가 형성되는 반결구종인 조선배추가 탄생된 시기는 18501860년경으로 추정되며 이때 경성 배추와 개성배추가 널리 재배되었다. 20세기 전후로 결구종인 호배추가 도입되었고 오랜 선발과 육종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결구배추를 재배하게 되었다. 1920년대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재래종 배추는 100통에 69원이고, 호배추는 4원 수준이었다. 1950년대에 김장할 때는 호배추를 2등분하여 소금물에 절였지만, 1990년대 이후 개발된 호배추는 한 포기에 1㎏이 넘어 4등분을 해야 잘 절여진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청나라가 군대를 서울로 보낸 것을 계기로 조선에 중국인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경기도 김포 일대에서 배추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중국인들도 있었다. 조선에 살던 중국인들은 춘절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때 짐 속에 배추 종자를 넣어서 왔다. 그 과정에서 조선 배추와 품종이 다른 중국 배추가 한반도로 들어왔고, 이 배추를 재래종 배추와 구분하여 중국에서 들여온 배추라 하여 호배추(胡배추)라고 불렀다.
호배추는 조선 배추에 비해 수확량이 많아 조선총독부에서는 호배추 재배를 적극 권장하였고, 1930년대 들어서면서는 조선 전역에서 호배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추위에 약한 반결구종인 조선 배추와 달리 결구종인 호배추는 속잎이 꽉 차서 얼더라도 겉잎을 떼어 내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호배추는 조선 배추에 비해 억세고, 김치의 감칠맛이 적고, 우거지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배추가 더 선호되었다. 1950년대 말에는 호배추를 개량한 결구배추 품종이 계속 개발되면서 호배추가 조선 배추를 점차 대신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초반에는 시장에서 값비싼 재래종 배추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값싼 호배추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결국 1980년대 초반에는 호배추로만 김장 김치를 담그게 되었다.
호배추라는 명칭은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1950년대 이후 점차 호배추가 배추김치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면서 재래종 배추와 구분되었던 호배추라는 이름은 그냥 배추로 바뀌었고, 재래종 배추가 오히려 조선 배추로 구분되어 불리게 되었다. 개량된 결구배추인 호배추는 오늘날 배추 김치의 재료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반결구종인 조선 배추는 이제는 얼갈이배추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