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국수는 삶은 건면에 돼지고기를 우려낸 국물을 붓고 고기를 썰어 얹은 가락국수이다. 제주도의 향토음식으로 유명하다. 고기국수는 한국전쟁 후 미국의 밀가루 원조 사업과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제주도에 밀가루 건면 상품이 대중화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제주 양돈산업이 발전하면서 돼지고기가 고기국수에 널리 쓰였다. 1973년에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면서 경조사 때 쌀밥 대신 국수를 대접하도록 제주도민들에게 알리면서 고기국수가 제주에 정착되었다.
본토와는 달리 화산섬 제주도는 잡곡문화권(雜穀文化圈)에 속해 곡물을 가루로 내어 조리한 범벅, 보리빵, 수제비, ‘칼국(칼싹두기)’ 그리고 ‘개역’(볶은 잡곡분말) 등 분식을 일상적으로 먹어 왔다. 그 중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칼로 싹둑싹둑 썰어 만든 칼국은 당제나 마을 공동체 행사에 함께 먹었던 한 그릇의 끼니음식이다.
일제강점기에 제주도 내 주요 항구(제주항, 서귀포항, 성산포항, 한림항)에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밀가루와 건면 우동이 유입되었다. 더불어 중국 산동성 출신 화교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호떡집, 만두집, 국수집 등 중국 음식점들이 생겨나 면류들이 상품화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미국산 밀가루가 제주에 유입되었고, 장터에서 이를 이용한 건면 제조업소들이 문을 열었다. 한국전쟁 후에 시작되어 1964년까지 이어진 미국의 밀가루 원조사업 그리고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은 제주도에 밀가루 건면 상품의 대중화를 열었다. 특히 1973년에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면서 경조사 때 쌀밥 대신 국수를 대접하도록 도민들에게 알리면서 고기국수는 제주도에 정착되었다.
제주도에서는 잔치나 상례(喪禮) 때 집 울타리 안 통시에서 사육하였던 돼지를 도축하여 고기와 국물을 쌀밥과 함께 대접하는 풍속이 있는데, 이즈음에는 접대용 밥상을 차리는 대신에 삶은 건면을 고기국물에 말아 국수를 만들고 돼지고기, 순대, 두부 등을 한 접시에 담은 '고깃반'과 함께 면상을 차리면서 고기국수가 의례 음식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 감귤산업과 관광산업이 활성화되고 아울러 양돈 농가의 돼지 사육 두수가 크게 늘면서 돼지고기가 풍부해지자 대중식당 메뉴에 고기 석 점을 얹은 지금의 고기국수가 완성된 것이다.
고기국수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건면은 중면으로 골라 삶아서 준비하고, 국물은 돼지고기 삶은 국물에 뼈를 고아서 우려낸다. 수육은 한입 편육 크기로 잘라 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고 거기에 당근과 고춧가루를 곁들여 담아낸다.
고기국수 속에는 잡곡 식생활 문화권에 속해 가루음식이 일상이었던 탐라(耽羅)의 역사와 문화가 연연(蜒然)히 흐르고 있으며, 이 속에 가루음식의 전형성을 담고 있다. 화산섬 기후와 토질에 적합한 메밀은 이곳의 주식이자 분식 문화를 주도한 작물이었다. 근현대에 이르러 열린 바닷길로 들어온 일본인과 중국인의 밀 분식 문화 유입과 한국전쟁 후 미국의 밀가루 배급 그리고 공장제 건조품인 중면의 생산과 유통은 기존 메밀면 문화를 밀어내고 밀면 문화를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제주 고기국수가 크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국내 및 중국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본토인의 제주살이 열풍의 결과이다. 제주 고기국수와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밀면인 ‘오키나와 소바’는 돼지고기 국물과 수육 그리고 세계대전 후 미국의 구호품인 밀가루로 만들어 대중화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