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한말부터 일제시기에 걸쳐 활동한 친일 기업인.
인적사항
주요 활동
무관이었던 그가 단기간에 재계의 유력 인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특히 을사조약(乙巳條約)에 따른 일제 통감정치 하에서 재정 고문으로 들어온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의 화폐정리사업에 적극 협조하였고 그 공로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07년 메가타가 일본으로 귀국할 때에는 ‘메가타 남작 송별회’의 평의원을 맡았다. 1908년에는 식민지 국책기관의 상징이 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의 설립위원으로 참여했고, 1909년에는 식민지 중앙은행이 될 조선은행(朝鮮銀行) 설립에도 관계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일진회가 ‘한일합방 청원’을 위해 일본에 가는 데도 동참하였다. 1912년 메이지〔明治〕 일본 왕이 사망했을 때도 조선 경성부 대표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조문했다.
친일의 강도에 비례하여 조선 재계에서 위상도 더 높아졌다. 1911년 경성 조선인상업회의소 회장에 취임하였고, 1912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그를 조진태(趙鎭泰), 조병택(趙秉澤)과 함께 ‘조선 실업계의 3원로’로 칭했다. 1920년에는 조선 재계를 대표하는 조선실업구락부를 조직하고 부회장에 선입되었다. 1928년에는 한성은행(漢城銀行) 은행장으로 취임하여 1933년까지 재임하였다. 칙임관 대우 참의로 임명되어 1933년 사망할 때까지 직위를 유지하였다.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민영휘에서 안희제까지, 부산에서 평양까지』 (오미일, 푸른역사, 2014).
- 『제국과 상인』,(이승렬, 역사비평사, 2007).
-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09).
인터넷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https://nl.go.kr/newspaper)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https://newslibrary.naver.com)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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