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구한말,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계의 대표적 친일 기업가.
인적사항
기업인으로의 변신
주요 활동
이 시기에 오면 친일 기업가로서의 모습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1907년 재정 고문 메가타가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자 ‘메가타 남작 송별회’의 평의원(評議員)을 맡았고,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장례식에 경성상업회의소 대표로 참가했다. 1912년, 메이지[明治] 일본 왕이 사망했을 때도 상장(喪章)을 만들어 무료 배포하고, 한편으로 경성부 대표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조문했다.
일제강점기 조선 재계에서 위상은 더 높아졌다. 1912년 조선상업은행 은행장, 1916년 다이쇼[大正]실업친목회 발기인, 1918년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설립위원과 상담역, 1920년 조선일보사 초대 사장, 1921년 조선총독부 산업조사위원회 위원, 1926년 조선철도주식회사 이사가 되었다. 1927년에는 조선총독부 자문(諮問) 기구인 중추원 칙임관 대우 참의로 임명되어 1933년 사망할 때까지 직위를 유지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오미일,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민영휘에서 안희제까지, 부산에서 평양까지』(푸른역사, 2014)
- 이승렬, 『제국과 상인』(역사비평사, 2007)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인터넷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https://nl.go.kr/newspape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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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공직에 종사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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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시대에, 오위의 군사를 거느리던 장수. 종이품의 관원으로 12명을 임명하였는데, 임진왜란 뒤에 정삼품으로 하고 인원도 15명으로 늘렸으나 실권은 훈련도감에 빼앗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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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인동은 현재 경북 구미와 칠곡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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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부하, 식구, 제자 등을 거느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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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진태가 무관 출신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있다. 이승렬은 당시에는 일정한 재력을 가진 상인들이 허직으로 무반직을 받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무반 출신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오히려 포전(布廛)조합에 가입한 시전(市廛) 상인 출신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이승렬, 『제국과 상인』, 역사비평사, 2007, 117~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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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베와 무명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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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전에 그 벼슬자리에 있던 벼슬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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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어떠한 일을 평의하는 데 참여하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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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일본의 정치가(1841~1909). 막부 정권 타도에 앞장섰으며, 총리대신과 추밀원 의장을 지냈다. 주한 특파 대사로서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으며, 1905년에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우리나라 국권 강탈을 준비하던 중, 1909년에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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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상중에 있거나 죽음을 슬퍼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옷깃이나 소매 따위에 다는 표. 보통 검은 헝겊이나 삼베 조각으로 만들어 붙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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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1918년에 산업 기관에 자금을 대출할 목적으로 설립한 특수 은행.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으면서 일제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광복 이후 한국 식산 은행으로 되었다가 1952년에 한국 산업 은행에 흡수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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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1921년에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산업 전반을 조사하려고 만든 기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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