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

  • 역사
  • 인물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칭
  • 이명한말다(韓末多)
인물/근현대 인물
  • 대표 상훈건국훈장 애족장
  • 사망 연도2002년
  • 성별여성
  • 주요 경력한국광복군 제2지대 대원
  • 출생 연도1920년
  • 출생지평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김주용 (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 최종수정 2025년 10월 24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영애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구대장 노복선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1920년 9월 9일 평양 상수구리(上水口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말다(韓末多)이다.

주요 활동

1945년 6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강남부대에 입대하였다. 구대장 노복선(盧福善)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광복군은 군대 설립 당시 인적 자원 확보가 가장 큰 과제였던 만큼, 초모활동에 큰 비중을 두었다. 초모활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창설할 때 큰 방향이 설정되었다. 한국광복군편련계획대강(韓國光復軍編練計劃大綱)의 징모방법을 통해 초모활동의 대상과 방법을 규정하였다. 주요 대상은 만주독립군, 적 점령 지구와 국내 및 동북 지역의 한인 장정, 일본군 내 한인 사병 등이었다. 징모처는 기간병을 충원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중시되었으며, 전선과 가까운 곳에 설치되었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 -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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