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한말다(韓末多)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20년
사망 연도
2002년
출생지
평양
주요 경력
한국광복군 제2지대 대원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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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한영애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구대장 노복선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1920년 9월 9일 평양 상수구리(上水口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말다(韓末多)이다.

주요 활동

1945년 6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강남부대에 입대하였다. 구대장 노복선(盧福善)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광복군은 군대 설립 당시 인적 자원 확보가 가장 큰 과제였던 만큼, 초모활동에 큰 비중을 두었다. 초모활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창설할 때 큰 방향이 설정되었다. 한국광복군편련계획대강(韓國光復軍編練計劃大綱)의 징모방법을 통해 초모활동의 대상과 방법을 규정하였다. 주요 대상은 만주독립군, 적 점령 지구와 국내 및 동북 지역의 한인 장정, 일본군 내 한인 사병 등이었다. 징모처는 기간병을 충원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중시되었으며, 전선과 가까운 곳에 설치되었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6)
집필자
김주용(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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