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출신이며, 남편은 같은 고향 출신의 김영준이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상하이에 거주하다가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제2구대 1분대원으로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남성 대원과 함께 교육 훈련을 받고, 초모활동, 선전 활동, 정보 수집 등을 수행하였으며, 여성 대원으로서 세탁, 재봉, 구호대 활동 등의 일과를 추가로 수행하였다. 1946년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남편과 함께 상하이에 거주하다가, 윤봉길의 의거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일본군을 피해서 이동할 때 함께 활동하였다.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으며, 1945년 5월 당시 이하유(李何有), 오동수(吳桐秀), 김봉식(金鳳植), 최봉상(崔鳳祥), 정정산(鄭正山), 조광선(趙光善), 전일묵(田一默), 정순옥(鄭順玉), 이지성(李志成), 신국빈(申國彬), 한종원(韓宗元), 김성률(金聲律), 고철호(高澈浩), 안정숙(安貞淑)과 함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1분대원으로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당시 한국광복군 제2지대는 이범석(李範奭)이 지대장이었으며, 노태준이 제2구대장을 맡았다.
당시 분대에는 남성 대원과 여성 대원이 함께 편제되어 있었던 만큼, 남성 대원과 함께 교육 훈련을 받고, 초모활동(招募活動), 선전 활동, 정보 수집 등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여성 대원은 세탁, 재봉, 구호대 활동 등의 고된 일과를 추가로 수행해야 하였다.
해방 직후 남편 김영준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중국 내 한인들의 신변 보호 및 귀국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한 후, 1946년 6월 제2지대장 이범석과 함께 귀국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남편과 함께 1946년에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사망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