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협력을 위해 설립했으며, 1961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에 약 2천 명의 단원과 직원을 파견하여 영어 교육 및 공중보건 프로그램을 진행한 단체이다. 미국 국무부 직속기관으로 민간 봉사단체를 표방하였으며, 평화봉사단원들은 2년간 저개발국가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제공하였다. 설립 이래 2024년 현재까지 60여 개 국에 24만 명 이상의 평화봉사단이 파견되어 2천 6백여 곳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3월 1일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뉴프론티어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봉사단원을 선발하고 훈련한 뒤 2년간 주1으로 파견하여 기술 협력을 실시하는 단체이다. 미국 국무부의 직속기관이지만 민간 봉사단체를 표방하고 있고, 피플투피플[people-to-people] 프로그램에 입각해 활동하고 있다. 세계 평화와 국제 친선을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지만 냉전체제 아래에서 미국의 소프트 주2를 구축하는 암묵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미국 정부는 평화봉사단이 개발도상국에 미국식 주3을 전파할 뿐 아니라 소련 및 주4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하였다. 그 때문에 초기 평화봉사단은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전략적 지역, 즉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위주로 우선 배치되었다. 한국의 경우 평화봉사단이 창단되자마자 정부 차원에서 파견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냉전체제 아래에서 미국의 우방으로서의 지위가 확고했기 때문에 파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베트남 파병 요청을 수락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추가적인 주5사업의 일환으로 평화봉사단의 파한이 거론되기 시작하였고, 양국 정부는 영어 교육과 주6관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평화봉사단 활동을 추진할 것에 합의하였다.
1966년 9월 14일 한국과 미국 사이에 「미국 평화봉사단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면서 평화봉사단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평화봉사단은 서울에 본부를 설치하고 2~3개 도를 1개 지역으로 구성하여 총 4개의 지부를 서울과 대전, 광주[이후 전주로 이전], 대구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1981년까지 K-1부터 K-51까지 총 50차례에 걸쳐 약 2천 명의 단원과 직원들이 한국에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주한미평화봉사단원들은 미국 하와이주 힐로[Hilo]를 비롯하여 미국 각지에 위치한 훈련소에서 12주간 언어와 전문적인 기술 등 기본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내한한 후 약 1주일 간의 주7을 거쳐 각각의 근무지에 배정되었다. 주한미평화봉사단이 주력한 분야는 교육과 공중보건관리였다. 교육프로그램에 배치된 단원들은 주로 영어 교육 분야에 종사하여 중등학교나 대학에서 TESOL 강사로 활동하였다. 공중보건관리 프로그램에 배치된 단원들은 각지의 보건소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결핵 검사를 실시하고 주8 보건과 가족계획 등을 교육하였다.
한편 평화봉사단원은 초청국의 정치에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 광주에서 활동하던 4명의 평화봉사단원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하고 주9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경험한 내용을 알렸다. 또한 활동을 종료한 봉사단원 2명은 광주의 사진과 기사를 국외로 반출하여 당시 상황을 해외 언론에 알렸다. 이 일로 한국 정부가 주한미평화봉사단의 즉각적 철수를 요구하는 등 한국과 미국 사이에 외교적 마찰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평화봉사단은 닉슨 행정부 아래서 국가자원봉사기관 ACTION 산하로 편입되면서 예산과 규모가 대폭 감축되었다. 이에 따라 평화봉사단 본부는 한국에서의 점진적 철수를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철수 예정 시점은 1982년 7월이었다. 이에 따라 1980년 8월 먼저 교육 분야가 철수하였다. 그리고 1981년 9월 예산 삭감을 이유로 공중보건 분야마저 철수하면서 한국에서의 평화봉사단 활동은 예정보다 일찍 조기 종결되었다.
민간 봉사단체를 표방하며 미국 정부에 의해 설립된 평화봉사단은 제3세계에 파견되어 피플-투-피플 방식으로 원조 활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문화사절단의 역할도 수행했으며, 냉전 시대에는 미국의 냉전 전략에 활용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의 활동은 영어 교육과 공중보건관리에 집중되었다. 한국에 파견되었던 평화봉사단원들 중 일부는 활동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한 뒤 대학원에서 지역학으로서 주10을 전공하여 미국내 한국학의 탄생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