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전용촉진회는 1949년 6월 12일 조선어학회와 협력해 한글 전용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조직되었다. 1948년 10월 1일 의회는 공용 문서를 한글로 쓴다고 규정한 한글전용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한글 전용이 정부의 공식 언어정책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한글전용법에는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었고,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 한글 전용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자 해방 이후부터 한글 전용을 주장해 온 조선어학회는 1949년 5월 25일 이사회를 열고 학회와 협력하여 한글 전용에 적극 나설 민간단체로서 한글전용촉진회를 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글전용촉진회는 조선어학회 이사장인 최현배를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부위원장에는 조인승과 이희승을 선임하였다. 본부는 조선어학회 안에 두었고 총무부와 보급부, 사업부, 조사연구부를 설치하였다. 이렇게 조직된 한글전용촉진회는 활발한 운동 전개를 위해 6월 26일 조선어학회 회원을 중심으로 교육, 문화, 법조, 관공서 등 각계 인사들로 임원진을 강화하였다. 조선어학회에서도 50만 원을 대여하여 한글전용촉진회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임원진을 보강하고 재정적 기반을 갖춘 한글전용촉진회는 전국 각 도와 시에 지회를, 각 부 · 군에 분회를 조직하였다. 가장 먼저 조직된 지회는 8월 7일 결성된 경남지회였다. 뒤이어 전북지회와 경북지회, 목포분회와 군산분회 등이 조직되었다. 각 지회와 분회의 주요 구성원은 한글전용법 시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무국 직원 등 주1들과 교과서 한자 폐지 등 교육현장에서 한글전용운동을 전개해온 교사들이었다.
한글전용촉진회의 사업은 국어 교육 및 한글문화의 향상 발전에 관한 조사 연구, 한글 보급 및 전용, 국어 정화에 대한 실천운동, 한글 지도를 위한 강연회와 강습회 개최, 기관지 및 출판물 간행 등 한글문화 보급과 관련한 제분야를 총망라하였다. 이를 위해 한글전용촉진회는 서울, 부산, 전주, 대구, 목포, 광주, 진주, 청주, 김포 등 전국 각지에서 교육자, 일반 유지, 대학생을 상대로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교과서와 공문서의 한글 전용, 철도역 명의 한글 전용, 음식점의 일본식 명칭과 관청 및 상점 간판의 한글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글전용촉진회는 정부의 공식 언어정책으로 한글 전용이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천이 지지부진하자 조선어학회와 협력하여 한글 전용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각 도 · 시 · 군 지역에 지부를 갖춘 한글전용촉진회는 전쟁 발발로 그 활동이 중단될 때까지 각 분야의 한글 쓰기 운동을 전개하고 한글 강습회를 여는 등 한글 문화의 확산과 보급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