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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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가에서 좌초된 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과 승조원 26명이 이 일대 육지로 침투한 사건이다. 이들 중 자체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대한민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江陵地域 武裝共匪 侵透事件)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가에서 좌초된 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과 승조원 26명이 이 일대 육지로 침투한 사건이다. 이들 중 자체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대한민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李穗根)이 남측에 귀순하여 살다가 1969년 1월 여권을 위조하여 해외로 출국하여 체포된 후 간첩으로 몰리게 된 사건.
이수근 사건 (李穗根 事件)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李穗根)이 남측에 귀순하여 살다가 1969년 1월 여권을 위조하여 해외로 출국하여 체포된 후 간첩으로 몰리게 된 사건.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차장, 의열단원, 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근로인민당 부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장건상 (張建相)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차장, 의열단원, 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근로인민당 부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양명산 (梁明山)
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위성공신(衛聖功臣) 3등에 녹훈된 이상의(李尙毅, 1560∼1624)의 초상화 초본을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가 1735년(영조 11)에 베껴 그린 이모본(移模本).
이상의 영정 (李尙毅 影幀)
1613년(광해군 5) 위성공신(衛聖功臣) 3등에 녹훈된 이상의(李尙毅, 1560∼1624)의 초상화 초본을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가 1735년(영조 11)에 베껴 그린 이모본(移模本).
최종길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자 교수로, 1973년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수사관의 고문과 폭행에 의해 숨진 인물이다. 1973년 중앙정보부는 최종길의 조사 과정에서 간첩임을 자백하고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최종길의 간첩 자백 사실과 사망 현장 검증 등을 허위로 조작하였고, 그의 죽음이 고문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최종길 (崔鍾吉)
최종길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자 교수로, 1973년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수사관의 고문과 폭행에 의해 숨진 인물이다. 1973년 중앙정보부는 최종길의 조사 과정에서 간첩임을 자백하고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최종길의 간첩 자백 사실과 사망 현장 검증 등을 허위로 조작하였고, 그의 죽음이 고문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1975년 11월부터 12월까지 재일동포 유학생 20여 명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등 공안기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체포 및 기소되었던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공안기관은 북괴가 그들의 공작원을 유학생으로 가장, 서울대 등 국내 학원에 침투시켜 국가 변란을 획책해 온 대규모 학원 침투 북괴간첩단사건으로 발표하였다. 1970~80년대 숱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사건으로 20여 명이 체포-구속되었고, 일부는 10년 이상의 형을 살았다.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在日僑胞 留學生 間諜團 事件)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1975년 11월부터 12월까지 재일동포 유학생 20여 명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등 공안기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체포 및 기소되었던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공안기관은 북괴가 그들의 공작원을 유학생으로 가장, 서울대 등 국내 학원에 침투시켜 국가 변란을 획책해 온 대규모 학원 침투 북괴간첩단사건으로 발표하였다. 1970~80년대 숱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사건으로 20여 명이 체포-구속되었고, 일부는 10년 이상의 형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