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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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인류가 큰 돌을 이용하여 만든 축조물.
거석기념물 (巨石記念物)
석기시대 인류가 큰 돌을 이용하여 만든 축조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변형 고인돌. 지석묘.
길주 문암리 고인돌 (吉州 門岩里 고인돌)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변형 고인돌. 지석묘.
「박제상 설화」는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충신 박제상과 그를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에 관한 설화이다. 박제상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서사적으로 초점화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박제상을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은 죽어서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고 종교적 의례와 주술의 대상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이야기에 따라 죽은 박제상의 부인과 그의 딸들이 새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박제상 설화 (朴堤上 說話)
「박제상 설화」는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충신 박제상과 그를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에 관한 설화이다. 박제상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서사적으로 초점화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박제상을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은 죽어서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고 종교적 의례와 주술의 대상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이야기에 따라 죽은 박제상의 부인과 그의 딸들이 새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완주(完州) 덕천리(德川里) 고인돌군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칠암마을과 구암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고인돌군이다. 현재 다섯 개의 군을 이루며 30여 기가 흩어져 있다. 칠암마을에서 덕평로를 타고 남쪽인 원덕천마을로 가는 서편 밭 가운데에 7여 기가 분포하고, 구암마을 내에 20여 기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고인돌의 분포로 볼 때, 청동기시대의 강력한 고인돌 축조 집단이 이 지역 일대에 존속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완주 덕천리 고인돌군 (完州 德川里 고인돌群)
완주(完州) 덕천리(德川里) 고인돌군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칠암마을과 구암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고인돌군이다. 현재 다섯 개의 군을 이루며 30여 기가 흩어져 있다. 칠암마을에서 덕평로를 타고 남쪽인 원덕천마을로 가는 서편 밭 가운데에 7여 기가 분포하고, 구암마을 내에 20여 기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고인돌의 분포로 볼 때, 청동기시대의 강력한 고인돌 축조 집단이 이 지역 일대에 존속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고인돌은 지상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 밑에 받침돌로 널돌이나 자연석을 고이거나, 주검을 안치한 매장 시설이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자 기념물이다. 고인돌은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고인돌 밀집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약 1천 년 동안 존속되었다. 2000년에 고창 죽림리 · 도산리와 화순 효산리 · 대신리, 강화 부근리 · 삼거리 · 오상리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거석문화 중심지로 공인되었다.
고인돌
고인돌은 지상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 밑에 받침돌로 널돌이나 자연석을 고이거나, 주검을 안치한 매장 시설이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자 기념물이다. 고인돌은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고인돌 밀집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약 1천 년 동안 존속되었다. 2000년에 고창 죽림리 · 도산리와 화순 효산리 · 대신리, 강화 부근리 · 삼거리 · 오상리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거석문화 중심지로 공인되었다.
선돌은 선사시대에 땅 위에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 돌을 하나 이상 세워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 등으로 삼은 돌기둥 유적이다. 입석(立石)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선돌은 대부분 자연석을 그대로 세우거나 극히 일부만을 치석해 세웠다. 둥근 뿔이나 둥근 기둥, 또는 모난 뿔이나 모난 기둥 형태가 많다. 외경 또는 예배, 기원의 대상으로서 정령숭배 또는 생식기숭배같은 원시신앙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 지방에서는 남방식 고인돌과 선돌이 공존하고 있어서 그 상호간의 기능적 성격에 대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에 땅 위에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 돌을 하나 이상 세워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 등으로 삼은 돌기둥 유적이다. 입석(立石)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선돌은 대부분 자연석을 그대로 세우거나 극히 일부만을 치석해 세웠다. 둥근 뿔이나 둥근 기둥, 또는 모난 뿔이나 모난 기둥 형태가 많다. 외경 또는 예배, 기원의 대상으로서 정령숭배 또는 생식기숭배같은 원시신앙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 지방에서는 남방식 고인돌과 선돌이 공존하고 있어서 그 상호간의 기능적 성격에 대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고인돌과 선돌 관련 복합유적. 입석·지석묘.
휴천리 지석 및 입석 (休川里 支石 및 立石)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고인돌과 선돌 관련 복합유적. 입석·지석묘.
「화석설화」는 사람이나 살아 있는 무언가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돌이 되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이나 동물의 흔적, 그 밖의 다른 사물일 수도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유형의 이야기는 사람이 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돌이 되는 과정에는 특별한 사건이 존재하며, 이 사건이 이야기에서 가장 초점화되는 대상이다. 이 핵심 사건을 구성하는 계기에는 금기의 위반, 정념의 배신이나 좌절, 상사의 정동, 억울함이 깃든 원념, 비극적 죽음, 영원을 향한 약속이나 영원한 기억을 위한 기념비 등 다양하다.
화석설화 (化石說話)
「화석설화」는 사람이나 살아 있는 무언가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돌이 되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이나 동물의 흔적, 그 밖의 다른 사물일 수도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유형의 이야기는 사람이 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돌이 되는 과정에는 특별한 사건이 존재하며, 이 사건이 이야기에서 가장 초점화되는 대상이다. 이 핵심 사건을 구성하는 계기에는 금기의 위반, 정념의 배신이나 좌절, 상사의 정동, 억울함이 깃든 원념, 비극적 죽음, 영원을 향한 약속이나 영원한 기억을 위한 기념비 등 다양하다.
화순월산리지석묘(和順月山里支石墓)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뚜껑돌식 고인돌이다. '뚜껑돌식'은 고임돌이 없는 형식을 말한다. 동복천변의 충적 평지에 2기가 분포하며, 1981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2호 고인돌에서 돌끌, 반달돌칼, 돌도끼 조각이 출토되었다. 특히 2호 벽석 위쪽에서 백제시대 뚜껑접시 1점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백제시대에 이루어진 거석신앙의 일면을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화순 월산리 지석묘 (和順 月山里 支石墓)
화순월산리지석묘(和順月山里支石墓)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뚜껑돌식 고인돌이다. '뚜껑돌식'은 고임돌이 없는 형식을 말한다. 동복천변의 충적 평지에 2기가 분포하며, 1981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2호 고인돌에서 돌끌, 반달돌칼, 돌도끼 조각이 출토되었다. 특히 2호 벽석 위쪽에서 백제시대 뚜껑접시 1점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백제시대에 이루어진 거석신앙의 일면을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