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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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만주 (滿洲)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책중일록』은 조선후기 문신 이민환이 후금과의 심하전쟁에 출정한 1619년부터 1620년 7월에 귀환할 때까지 기록한 종군일기이다. 이민환은 1619년 명나라의 징병에 의해 도원수 강홍립의 종사관으로 후금에 출정하였다. 부차 들판에서 후금의 기습 공격으로 강홍립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가 1620년 귀환하였다. 귀환한 이후 패전의 책임을 지고 평안도에서 유랑하며 출정에서 귀환까지 날짜순으로 『책중일록』와 『건주문견록』을 저술하였다. 『책중일록』은 명·조선 연합군과 후금군 사이에 있었던 이 전쟁의 전후 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책중일록 (柵中日錄)
『책중일록』은 조선후기 문신 이민환이 후금과의 심하전쟁에 출정한 1619년부터 1620년 7월에 귀환할 때까지 기록한 종군일기이다. 이민환은 1619년 명나라의 징병에 의해 도원수 강홍립의 종사관으로 후금에 출정하였다. 부차 들판에서 후금의 기습 공격으로 강홍립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가 1620년 귀환하였다. 귀환한 이후 패전의 책임을 지고 평안도에서 유랑하며 출정에서 귀환까지 날짜순으로 『책중일록』와 『건주문견록』을 저술하였다. 『책중일록』은 명·조선 연합군과 후금군 사이에 있었던 이 전쟁의 전후 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후금과의 심하전쟁에 출정하였던 종사관 이민환이 후금 지역에서 경험한 각종 정보들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포로로 잡혀 있다가 1620년 7월에 귀환하여 『책중일록』과 함께 저술한 책이다. 책의 대부분은 건주(建州) 지역에서 경험한 각종 정보들을 기록한 것이며, 그 말미에 후금(後金)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 전략과 군대 양성 및 훈련에 관한 6개조의 정책 건의서를 붙였다. 청나라 초기 건주 지역의 정치 군사 및 지리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조정에 건의한 방어 정책을 통해 당시 조선의 군사적 문제와 개선 방안을 잘 알 수 있다.
건주문견록 (建州聞見錄)
후금과의 심하전쟁에 출정하였던 종사관 이민환이 후금 지역에서 경험한 각종 정보들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포로로 잡혀 있다가 1620년 7월에 귀환하여 『책중일록』과 함께 저술한 책이다. 책의 대부분은 건주(建州) 지역에서 경험한 각종 정보들을 기록한 것이며, 그 말미에 후금(後金)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 전략과 군대 양성 및 훈련에 관한 6개조의 정책 건의서를 붙였다. 청나라 초기 건주 지역의 정치 군사 및 지리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조정에 건의한 방어 정책을 통해 당시 조선의 군사적 문제와 개선 방안을 잘 알 수 있다.
조선전기 부사직, 경원첨절제사, 전라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이령 (朴以寧)
조선전기 부사직, 경원첨절제사, 전라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함경남도 삼수군의 압록강 대안(對岸)에 있었던 조선시대 여진족 거주지의 명칭.
상나란 (上那蘭)
함경남도 삼수군의 압록강 대안(對岸)에 있었던 조선시대 여진족 거주지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