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겁설"
검색결과 총 4건
겁설관은 고려 후기 국왕을 숙위하고 궁궐의 관리를 담당하던 몽골풍의 조직에 대한 총칭이다. 고려 충렬왕이 몽골의 제도를 차용하여 조직한 근시(近侍) 조직으로, 주로 의관자제(衣官子弟)와 문신관료(文臣官僚)들로 구성되었다. 겁설관으로는 군사적 역할을 하는 홀치[忽赤], 문서 행정 관련의 필도치[必闍赤] 등을 비롯하여 우달치[迂達赤], 속고치[速古赤], 파오치[波吾赤], 조라치[詔羅赤], 팔가치[八加赤] 등이 있었다.
겁설관 (怯薛官)
겁설관은 고려 후기 국왕을 숙위하고 궁궐의 관리를 담당하던 몽골풍의 조직에 대한 총칭이다. 고려 충렬왕이 몽골의 제도를 차용하여 조직한 근시(近侍) 조직으로, 주로 의관자제(衣官子弟)와 문신관료(文臣官僚)들로 구성되었다. 겁설관으로는 군사적 역할을 하는 홀치[忽赤], 문서 행정 관련의 필도치[必闍赤] 등을 비롯하여 우달치[迂達赤], 속고치[速古赤], 파오치[波吾赤], 조라치[詔羅赤], 팔가치[八加赤] 등이 있었다.
내시는 고려시대에 국왕의 각종 정무를 시봉하기 위하여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한 근시 조직이다. 급제와 같은 개인적 능력과 가문이라는 혈연 배경을 고려하여 선발하였다. 내시성 또는 내시원에 겸직의 형태로 속하였으며, 주로 국왕의 정무를 시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대부분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하였으나 무신정권기 이후 무신이나 환관 중에서도 선발되는 이들이 늘면서 그 위상이 점차 하락하였다.
내시 (內侍)
내시는 고려시대에 국왕의 각종 정무를 시봉하기 위하여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한 근시 조직이다. 급제와 같은 개인적 능력과 가문이라는 혈연 배경을 고려하여 선발하였다. 내시성 또는 내시원에 겸직의 형태로 속하였으며, 주로 국왕의 정무를 시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대부분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하였으나 무신정권기 이후 무신이나 환관 중에서도 선발되는 이들이 늘면서 그 위상이 점차 하락하였다.
필도치는 1278년(충렬왕 4), 몽골의 영향으로 등장한 문서 담당 관직이다. 충렬왕은 즉위 이후 왕권을 구축,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 몽골의 겁설(怯薛) 제도를 수용하였으며, 필도치(비칙치)는 그중 하나였다.
필도치 (必闍赤)
필도치는 1278년(충렬왕 4), 몽골의 영향으로 등장한 문서 담당 관직이다. 충렬왕은 즉위 이후 왕권을 구축,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 몽골의 겁설(怯薛) 제도를 수용하였으며, 필도치(비칙치)는 그중 하나였다.
파오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파오치는 주로 공민왕, 우왕 대에 근시 조직으로 활동하던 것으로 보인다. 1358년(공민왕 7)에 왜구가 교동(喬桐)에 침입하자 파오치 3개 번(番)에서 각각 10인을 징발하여 내보냈고, 1375년(우왕 1)에는 파오치 등이 내용(內用)을 빙자하여 주현(州縣)에 세금 등을 마구 거두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파오치 (波吾赤)
파오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파오치는 주로 공민왕, 우왕 대에 근시 조직으로 활동하던 것으로 보인다. 1358년(공민왕 7)에 왜구가 교동(喬桐)에 침입하자 파오치 3개 번(番)에서 각각 10인을 징발하여 내보냈고, 1375년(우왕 1)에는 파오치 등이 내용(內用)을 빙자하여 주현(州縣)에 세금 등을 마구 거두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