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려공산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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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국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과정에서 국민대회 준비를 주도하다 투옥되었다. 조선노동대회, 조선노동공제회 등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에 힘썼다. 서울청년회 내에서 상해파 국내부와 동아일보계를 축출함으로써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분화를 낳았다. 서울파 공산주의그룹 고려공산동맹을 조직하여 이끌었다. 만주에 동양학원, 대동학원을 세워 교육운동을 벌였다. 통일 조선공산당 결성을 위해 노력했으나 화요파에 의해 배제되었다.
김사국 (金思國)
김사국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과정에서 국민대회 준비를 주도하다 투옥되었다. 조선노동대회, 조선노동공제회 등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에 힘썼다. 서울청년회 내에서 상해파 국내부와 동아일보계를 축출함으로써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분화를 낳았다. 서울파 공산주의그룹 고려공산동맹을 조직하여 이끌었다. 만주에 동양학원, 대동학원을 세워 교육운동을 벌였다. 통일 조선공산당 결성을 위해 노력했으나 화요파에 의해 배제되었다.
권태석은 일제강점기 조선민흥회와 신간회,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며, 8·15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조선민족대동단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조선민흥회 상무위원, 1927년 신간회 창립 서무부 총무간사에 선임되었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신한민족당에 참여하였다.
권태석 (權泰錫)
권태석은 일제강점기 조선민흥회와 신간회,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며, 8·15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조선민족대동단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조선민흥회 상무위원, 1927년 신간회 창립 서무부 총무간사에 선임되었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신한민족당에 참여하였다.
이영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청년총동맹 상무위원, 조선공산당 정치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표단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관료·독립운동가이다. 1889년에 출생하여 1960년 사망했다. 중국 남경의 강녕제일실업학교 재학 중 조선광복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0년 귀국 후 1923년 고려공산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1927년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여했으며, 195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되었다. 1956년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장으로서 소련을 방문했다.
이영 (李英)
이영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청년총동맹 상무위원, 조선공산당 정치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표단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관료·독립운동가이다. 1889년에 출생하여 1960년 사망했다. 중국 남경의 강녕제일실업학교 재학 중 조선광복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0년 귀국 후 1923년 고려공산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1927년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여했으며, 195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되었다. 1956년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장으로서 소련을 방문했다.
장채극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사회주의자동맹 발기인 등을 역임한 서울청년회계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3·1운동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국민대회사건을 일으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여 서울청년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을 맡았다.
장채극 (張彩極)
장채극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사회주의자동맹 발기인 등을 역임한 서울청년회계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3·1운동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국민대회사건을 일으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여 서울청년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을 맡았다.
1925년 4월 화요회(火曜會)에서 사회운동의 조직적 통일과 기본방침을 토의하고자 개최된 민중운동자대회.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全朝鮮民衆運動者大會)
1925년 4월 화요회(火曜會)에서 사회운동의 조직적 통일과 기본방침을 토의하고자 개최된 민중운동자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