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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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당상은 조선 후기, 비변사 제조 중 변통 사무를 담당하던 관직이다. 계차에 따라 선임되고 정원은 없었다. 초기에는 주로 군사 관련 사안이 많았으나 점차 사회 경제적 사안으로 확대되었다. 팔도 구관당상은 비변사 제조 중 각 도의 사무에 익숙한 자를 차출하였고, 유사당상이 구관당상을 도와 각 도의 사무를 살폈다. 이로 인해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구관당상 (勾管堂上)
구관당상은 조선 후기, 비변사 제조 중 변통 사무를 담당하던 관직이다. 계차에 따라 선임되고 정원은 없었다. 초기에는 주로 군사 관련 사안이 많았으나 점차 사회 경제적 사안으로 확대되었다. 팔도 구관당상은 비변사 제조 중 각 도의 사무에 익숙한 자를 차출하였고, 유사당상이 구관당상을 도와 각 도의 사무를 살폈다. 이로 인해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영명사(永明寺)는 평양시 금수산(錦繡山)에 있는 고구려의 제1대 동명성왕의 유지로 광개토왕 때 창건한 사찰이라는 전승이 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절이 있어 고려시대 왕들이 행차하여 풍경을 즐겼던 곳 중 하나이다. 일제시대 때는 31본산 중 하나였으나 한국전쟁 때 사찰이 소실되었다.
금수산 영명사 (錦繡山 永明寺)
영명사(永明寺)는 평양시 금수산(錦繡山)에 있는 고구려의 제1대 동명성왕의 유지로 광개토왕 때 창건한 사찰이라는 전승이 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절이 있어 고려시대 왕들이 행차하여 풍경을 즐겼던 곳 중 하나이다. 일제시대 때는 31본산 중 하나였으나 한국전쟁 때 사찰이 소실되었다.
1896년 부산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개성학교 (開成學校)
1896년 부산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현대문화 가정독본』은 이만규가 남녀차별과 가정문제의 불합리성을 계몽하기 위하여 저술한 여성 교육용 교과서이다. 이만규는 1939년 7월부터 9월까지 3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가정독본’을 연재하였다. 1941년 이 논설문을 영창서관에서 출판하였다. 양장본이며, 머리말과 14장의 본문인 ‘새시대 가정 여성훈’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문에 연재될 당시부터 한글을 전용하였으며, 어려운 한자는 괄호 안에 병기하였다. 이만규의 가정교육관과 여자교육관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저서이다. 한국여성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현대문화 가정독본 (現代文化 家庭讀本)
『현대문화 가정독본』은 이만규가 남녀차별과 가정문제의 불합리성을 계몽하기 위하여 저술한 여성 교육용 교과서이다. 이만규는 1939년 7월부터 9월까지 3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가정독본’을 연재하였다. 1941년 이 논설문을 영창서관에서 출판하였다. 양장본이며, 머리말과 14장의 본문인 ‘새시대 가정 여성훈’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문에 연재될 당시부터 한글을 전용하였으며, 어려운 한자는 괄호 안에 병기하였다. 이만규의 가정교육관과 여자교육관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저서이다. 한국여성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은진읍지』는 1910년 이후 충청남도 은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실시한 고적 조사 과정에서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된다. 1책 24장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지도는 싣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호서읍지』에 수록된 읍지와 비슷한데, 책의 크기가 다르고 지도를 수록하지 않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구관 조사의 대상으로 삼은 읍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은진읍지 (恩津邑誌)
『은진읍지』는 1910년 이후 충청남도 은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실시한 고적 조사 과정에서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된다. 1책 24장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지도는 싣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호서읍지』에 수록된 읍지와 비슷한데, 책의 크기가 다르고 지도를 수록하지 않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구관 조사의 대상으로 삼은 읍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전의읍지』는 1910년 이후 충청남도 전의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구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베껴 썼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항목의 내용과 구성이 1871년에 편찬한 『호서읍지』의 「전성지」와 같다. 표제에 써넣은 ‘부사례’는 수록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구관 조사의 대상으로 삼은 읍지의 서지사항과 베껴 쓴 상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읍지이다.
전의읍지 (全義邑誌)
『전의읍지』는 1910년 이후 충청남도 전의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구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베껴 썼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항목의 내용과 구성이 1871년에 편찬한 『호서읍지』의 「전성지」와 같다. 표제에 써넣은 ‘부사례’는 수록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구관 조사의 대상으로 삼은 읍지의 서지사항과 베껴 쓴 상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읍지이다.
『태안읍지』는 1910년 이후 충청남도 태안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식민 지배를 위해 조선의 관습과 제도를 조사·검토하는 구관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 1책 35장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항목 구성과 내용은 모두 1871년의 『호서읍지』와 같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구관 조사 대상으로 삼은 읍지의 서지사항과 필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태안읍지 (泰安邑誌)
『태안읍지』는 1910년 이후 충청남도 태안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식민 지배를 위해 조선의 관습과 제도를 조사·검토하는 구관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 1책 35장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항목 구성과 내용은 모두 1871년의 『호서읍지』와 같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구관 조사 대상으로 삼은 읍지의 서지사항과 필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