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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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렬은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및 여운형·안창호의 검거 사건 등을 변론한 법조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26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법과를 수석 졸업하였다. 일본인변호사회와의 통합을 끝까지 반대했으며, 독립운동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무료로 변론했다. 1920∼1930년대 독립운동·사상문제에 관한 변호를 자임하였으며, 여운형(1929년), 안창호(1932년) 등의 변호를 맡았다. 광복 이후 과도정부의 사법부 법제처장,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법무부 차관과 검찰총장, 법무부장관과 한국법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권승렬 (權承烈)
권승렬은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및 여운형·안창호의 검거 사건 등을 변론한 법조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26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법과를 수석 졸업하였다. 일본인변호사회와의 통합을 끝까지 반대했으며, 독립운동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무료로 변론했다. 1920∼1930년대 독립운동·사상문제에 관한 변호를 자임하였으며, 여운형(1929년), 안창호(1932년) 등의 변호를 맡았다. 광복 이후 과도정부의 사법부 법제처장,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법무부 차관과 검찰총장, 법무부장관과 한국법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유진산은 해방 이후 3, 4, 5, 6, 7, 8, 9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5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26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독서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광복 여러 청년 조직을 결성해 청년운동을 하던 중 정계에 투신하였다. 1954년 이래 3~9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야당 중진 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70년 신민당 총재를 역임했다. 1974년 유신헌법개헌투쟁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결장암으로 죽었다. 유진산은 권모술수에 능한 합리주의자로, 민주정치의 기본을 대화와 타협에 두었던 정치인이었다.
유진산 (柳珍山)
유진산은 해방 이후 3, 4, 5, 6, 7, 8, 9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5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26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독서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광복 여러 청년 조직을 결성해 청년운동을 하던 중 정계에 투신하였다. 1954년 이래 3~9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야당 중진 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70년 신민당 총재를 역임했다. 1974년 유신헌법개헌투쟁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결장암으로 죽었다. 유진산은 권모술수에 능한 합리주의자로, 민주정치의 기본을 대화와 타협에 두었던 정치인이었다.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송진우 (宋鎭禹)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