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원구는 거리에서 우연히 소학교에서부터 대학 때까지 동창이며, 어린 시절 서로의 집을 오가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 동욱을 만난다. 동욱은 아직 미혼인 여동생 동옥과 함께 살고 있으며, 동옥이 그린 초상화로 미군 부대를 드나들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원구는 처음으로 외진 곳의 낡은 목조 건물에 사는 동욱을 찾아가나 동옥만이 차갑게 원구를 맞이한다. 그날 원구는 우연히 동옥이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음을 발견하고, 동욱이 매우 냉담하게 동옥을 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뒤 비가 와서 가게를 벌일 수 없는 날이면 원구는 자주 동욱 남매의 집을 찾곤 한다.
그러는 사이 동옥에게 마음이 끌림을 느끼고, 동옥 또한 원구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 그리고 동욱은 원구에게 동옥을 보살펴줄 이가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으며 동옥을 측은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보기만 하면 화가 치민다는 말을 하며, 원구에게 동옥과의 결혼 의사를 묻는다.
며칠 뒤 원구는 동욱의 초상화 주문 폐업과 동옥이 주인 노파에게 오빠 몰래 빌려준 2만환의 빚을 떼였음을 알게 된다. 오랜 장마로 장사가 되지 않자 마음까지 산란해진 원구는 동욱의 집을 찾아간다. 새 주인으로부터 동욱은 아마도 군대에 끌려간 듯 며칠째 소식이 없고, 동옥 또한 혼자 며칠 밤을 울다가 주인이 나무라자 원구에게 편지를 남기고 떠났는데 편지는 부주의로 없어졌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얼굴이 반반하니 몸을 판들 굶어죽기야 하겠느냐는 새 주인의 말에 분노를 느끼던 원구는 결국은 그 분노가 자신에게 되돌아옴을 느끼며 돌아선다. 그 뒤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동욱 남매 생각에 우울해지곤 한다.
비가 오는 음산한 풍경의 서술로 시작하여 수시로 이러한 풍경이 작품 속에 나타나는데 이는 곧 작중인물들의 심경이나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즉, 이상성격자(異常性格者) 동욱과 동옥의 절망과 무기력과 무위(無爲)를 그대로 나타내면서 동시에 이들 심리의 정확한 통찰을 통해 음울한 시대적 · 공간적 상황을 표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