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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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김군석이 1602년 7월부터 1709년 9월까지 국조(國朝)에서 있었던 일들을 발췌하여 일기식으로 정리한 실기. 정치서.
동각산록 (東閣散錄)
조선후기 김군석이 1602년 7월부터 1709년 9월까지 국조(國朝)에서 있었던 일들을 발췌하여 일기식으로 정리한 실기. 정치서.
조선 후기에, 사헌부집의, 시강원필선, 홍문관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재 (朴榟)
조선 후기에, 사헌부집의, 시강원필선, 홍문관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계축옥사와 관련된 무신.
박종인 (朴宗仁)
조선시대 계축옥사와 관련된 무신.
조선 후기에, 세자익위사세마 등을 역임한 문신.
박홍중 (朴弘中)
조선 후기에, 세자익위사세마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사간원헌납,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신율 (申慄)
조선 중기에, 사간원헌납,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
영창대군 (永昌大君)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
조선 후기에, 종묘봉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일로 (李逸老)
조선 후기에, 종묘봉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인목왕후 (仁穆王后)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조선 후기에, 예조참의, 선산부사, 부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송극인 (宋克認)
조선 후기에, 예조참의, 선산부사, 부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내시교관, 호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일형 (李日馨)
조선 후기에, 내시교관, 호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복시주부, 개령현감, 공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시현 (李時顯)
조선 후기에, 사복시주부, 개령현감, 공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서궁폐출과 관련된 학자.
설구인 (薛求仁)
조선후기 서궁폐출과 관련된 학자.
『창가루외사』는 조선 후기에 담정 김려가 편찬한 야사 총서이다. 본래 148권 74책인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122권 61책이다. 수록된 작품은 총 5종이다. 처음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2종(「석담일기」, 「제조번방지」)은 일실(逸失)되었다. 김려는 『한고관외사』도 편찬했는데 두 총서 간 겹치는 작품은 없다. 두 야사 총서는 상보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창가루외사』는 심노숭의 『대동패림』에도 수용되었고, 『대동패림』에 실린 이야기는 다시 패림으로 전이되었다. 이로부터 당시 야사 총서의 전이와 변용을 확인할 수 있다.
창가루외사 (倉可樓外史)
『창가루외사』는 조선 후기에 담정 김려가 편찬한 야사 총서이다. 본래 148권 74책인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122권 61책이다. 수록된 작품은 총 5종이다. 처음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2종(「석담일기」, 「제조번방지」)은 일실(逸失)되었다. 김려는 『한고관외사』도 편찬했는데 두 총서 간 겹치는 작품은 없다. 두 야사 총서는 상보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창가루외사』는 심노숭의 『대동패림』에도 수용되었고, 『대동패림』에 실린 이야기는 다시 패림으로 전이되었다. 이로부터 당시 야사 총서의 전이와 변용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 계축옥사와 관련된 학자. 서얼.
허홍인 (許弘仁)
조선후기 계축옥사와 관련된 학자. 서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