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의, 선산부사, 부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사간으로 폐모론에 가담하고, 남이공(南以恭)·이원익(李元翼) 등을 탄핵하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인조 때 중화부사(中和府使)가 되었다가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後金)의 군대가 침입할 때 감사에게 알리지 않고 도망쳤으므로 삭탈관작되기도 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가도록 되었으나, 마침 모문룡(毛文龍)이 사신일행을 도중에서 기다리다가 은과 인삼을 빼앗으므로 되돌아왔다. 다음 해에 동지 겸 성절사(冬至兼聖節使)로서 명나라에 다녀 가서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사헌부로부터 국가의 체모를 손상하고 경솔하게 행한 과실이 많다는 명목으로 탄핵을 받았다. 그 뒤 예조참의·선산부사·판결사(判決事) 등을 역임하고, 1635년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용주유고(龍洲遺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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