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남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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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전후해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남로당의 핵심간부 김삼룡과 이주하가 벌인 일련의 사건 및 체포 과정.
김삼룡·이주하 사건 (金三龍·李舟河 事件)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전후해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남로당의 핵심간부 김삼룡과 이주하가 벌인 일련의 사건 및 체포 과정.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약수 (金若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1948년 10월, 여수 주둔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ㆍ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 (麗水·順天 10·19事件)
1948년 10월, 여수 주둔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ㆍ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
강동정치학원은 남로당 계열의 활동을 지원할 정치공작대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8년 1월 1일 강동군에 설립한 북한 군사교육기관이다. 입교 학생은 모두 남한에서 월북한 자들로 창설 당시에는 대남공작요원 양성이 목적이었다. 제주4·3항쟁과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유격대요원 양성도 겸하게 되었다. 3개월의 군사 단기반과 6개월의 정치반이 있었고, 10차에 걸쳐 총원 2,385명을 양성하여 남파하였다. 한국군은 인민유격대 소탕 작전을 전개해야했기에 계획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강동정치학원 (江東政治學院)
강동정치학원은 남로당 계열의 활동을 지원할 정치공작대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8년 1월 1일 강동군에 설립한 북한 군사교육기관이다. 입교 학생은 모두 남한에서 월북한 자들로 창설 당시에는 대남공작요원 양성이 목적이었다. 제주4·3항쟁과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유격대요원 양성도 겸하게 되었다. 3개월의 군사 단기반과 6개월의 정치반이 있었고, 10차에 걸쳐 총원 2,385명을 양성하여 남파하였다. 한국군은 인민유격대 소탕 작전을 전개해야했기에 계획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덕구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이후 제주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를 그만둔 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라산으로 입산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봉기에 참여하였고,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들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사살되었다.
이덕구 (李德九)
이덕구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이후 제주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를 그만둔 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라산으로 입산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봉기에 참여하였고,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들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