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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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 지역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사람을 가리키는 사회용어. 납북인.
납북자 (拉北者)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 지역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사람을 가리키는 사회용어. 납북인.
김상덕은 일제강점기 조선독립청년단 대표, 임시정부 학무부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1917년 서울의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1919년에 조선독립청년단 대표로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에 참여하였고, 「조선민족혁명당창립경과급기약사」를 기술하였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김상덕 (金尙德)
김상덕은 일제강점기 조선독립청년단 대표, 임시정부 학무부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1917년 서울의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1919년에 조선독립청년단 대표로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에 참여하였고, 「조선민족혁명당창립경과급기약사」를 기술하였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홍구범은 1947년 단편소설 「봄이 오면」으로 등단하여 「창고 근처 사람들」·「농민」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잡지 편집자이다. 1949년 모윤숙·김동리·조연현 등과 『문예』를 창간하면서 편집을 맡았고, 청년문학가협회·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했다. 해방기에 가난한 민중들의 생활고를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하고 풍자하여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진 작가였다. 1950년 8월경에 인민군 보안서원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홍구범 (洪九範)
홍구범은 1947년 단편소설 「봄이 오면」으로 등단하여 「창고 근처 사람들」·「농민」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잡지 편집자이다. 1949년 모윤숙·김동리·조연현 등과 『문예』를 창간하면서 편집을 맡았고, 청년문학가협회·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했다. 해방기에 가난한 민중들의 생활고를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하고 풍자하여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진 작가였다. 1950년 8월경에 인민군 보안서원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광복 이후 『칠면조』를 저술한 시인.
여상현 (呂尙玄)
광복 이후 『칠면조』를 저술한 시인.
전라북도 내무국장을 역임하다가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납북된 정치인.
신석빈 (辛錫斌)
전라북도 내무국장을 역임하다가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납북된 정치인.
해방 이후 국회의원, 미군정청 경남고문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교육자.
구중회 (具中會)
해방 이후 국회의원, 미군정청 경남고문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교육자.
월북자는 해방 이후 남한 지역의 사람으로서 자의에 의해 북한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월북인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월북한 시기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해방 이후 미·소의 분할점령 및 정부수립 전후 시기, 전쟁 시기, 전쟁 이후 시기이다. 월북자는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정치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자로 해석되었다. 이 때문에 월북자들의 가족은 사회적 멸시 속에 아픔을 견뎌야 했다. 월북자의 문학과 예술작품은 1988년에 이르러 정부수립 이전의 순수 예술작품에 한해 해금되었다.
월북자 (越北者)
월북자는 해방 이후 남한 지역의 사람으로서 자의에 의해 북한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월북인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월북한 시기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해방 이후 미·소의 분할점령 및 정부수립 전후 시기, 전쟁 시기, 전쟁 이후 시기이다. 월북자는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정치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자로 해석되었다. 이 때문에 월북자들의 가족은 사회적 멸시 속에 아픔을 견뎌야 했다. 월북자의 문학과 예술작품은 1988년에 이르러 정부수립 이전의 순수 예술작품에 한해 해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