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전라북도 정읍 출생으로,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정읍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전라북도 내무국장을 역임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정읍 갑 지역구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북한군의 서울 점령 후 평양으로 옮겨, 1950년 7월 30일 중앙위정치국과 군사위합동연석회의의 결정 사항에 따라 백관수, 구중회, 백상규 등과 함께 세뇌를 위한 재교육 대상자가 되었다.
1950년 12월 초순, 장연송, 조현승, 김의환과 함께 만포 부근의 별오리 조통 합숙소로 옮겨졌다. 1951년 7월 엄항섭 등과 함께 휴전운동을 평화통일추진운동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종전과 휴전 협상을 체결하기 위한 호소문을 작성하는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