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노국대장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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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릉(德陵)은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능이다. 1325년 충선왕의 사후 개성부 서쪽으로 12리에 안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1377년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의 정릉 재실을 조영할 때 덕릉의 나무를 베어 조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현정릉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덕릉 (德陵)
덕릉(德陵)은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능이다. 1325년 충선왕의 사후 개성부 서쪽으로 12리에 안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1377년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의 정릉 재실을 조영할 때 덕릉의 나무를 베어 조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현정릉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관청.
보원고 (寶源庫)
고려시대의 관청.
고려후기 극성방어사, 밀직부사, 서북면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양백안 (楊伯顔)
고려후기 극성방어사, 밀직부사, 서북면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동경도병마사, 우상시, 중대광우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안극인 (安克仁)
고려 후기에, 동경도병마사, 우상시, 중대광우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정릉(正陵)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능이다. 1365년 2월 공주가 난산 끝에 죽자 4월 정릉에 안장하였다. 이후 7년간 환관 김사행이 지휘 감독을 하여 4도감 13색의 제도를 갖추고 영전과 무덤 공사에 힘을 쏟아 조영하여, 1372년 공민왕의 수릉인 현릉과 나란히 쌍릉으로 완성되었다. 북한의 국보유적이다.
정릉 (正陵)
정릉(正陵)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능이다. 1365년 2월 공주가 난산 끝에 죽자 4월 정릉에 안장하였다. 이후 7년간 환관 김사행이 지휘 감독을 하여 4도감 13색의 제도를 갖추고 영전과 무덤 공사에 힘을 쏟아 조영하여, 1372년 공민왕의 수릉인 현릉과 나란히 쌍릉으로 완성되었다. 북한의 국보유적이다.
해전고는 고려 후기에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의 명복을 비는 천수도량을 세운 뒤 비용을 충당하고자 설립하여 보원고(寶源庫)에 소속시킨 왕실 창고이다.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하자 공민왕이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인희전(仁熙殿)에 신위(神位)를 두고, 천수도량을 세웠다. 이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해전고를 설립하고 보원고에 속하게 하였다. 노국대장공주가 사용하던 물품을 베로 바꾸어 재원을 마련한 뒤 각 도에 나누어 주고 이자를 걷어 운영하였다.
해전고 (解典庫)
해전고는 고려 후기에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의 명복을 비는 천수도량을 세운 뒤 비용을 충당하고자 설립하여 보원고(寶源庫)에 소속시킨 왕실 창고이다.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하자 공민왕이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인희전(仁熙殿)에 신위(神位)를 두고, 천수도량을 세웠다. 이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해전고를 설립하고 보원고에 속하게 하였다. 노국대장공주가 사용하던 물품을 베로 바꾸어 재원을 마련한 뒤 각 도에 나누어 주고 이자를 걷어 운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