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의 귀중품을 보관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설치시기는 1369년(공민왕 19)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죽음으로 슬픔이 커진 공민왕(恭愍王)이 신하들과 함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인희전(仁熙殿)에 천수도량(千手道場)을 베풀면서, 이 때 덕천고(德泉庫)·연덕궁(延德宮)·영화궁(永和宮)·영복궁(永福宮)·영흥궁(永興宮)과 함께 여기에 소속시켰다.
그리고 보원고에는 별도로 해전고(解典庫)를 설치하여 재원을 보강하였다. 그 뒤 공민왕이 죽은 뒤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그 밖에 기우단(祈雨壇)을 설치하여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 왕실과 관련된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재원이 부족해져 실질적인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