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7년(공민왕 6) 판각문사(判閣門事)로 있으면서 황후천추절(皇后千秋節)의 경하사(慶賀使: 황제나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로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63년에는 개성윤(開城尹)으로, 당시 원나라에서 덕흥군(德興君)이 침략해 올 것에 대비하기 위한 극성방어사(棘城防禦使)에 임명되고 절령(岊嶺: 지금의 황해도 황주의 자비령)의 책(柵)을 방비하였다.
뒤에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어 재추(宰樞)의 반열에 올랐으며, 1365년에는 다시 원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죽음을 알렸다. 그 뒤 1369년에 동녕부(東寧府) 공격을 앞두고 서북면부원수(西北面副元帥)에 임명되었으며, 1371년에는 전라도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가 되었다. 그 뒤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