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당쟁"
검색결과 총 14건
조선후기 당쟁에 관한 내용을 서술한 역사서.
당원 (黨源)
조선후기 당쟁에 관한 내용을 서술한 역사서.
조선후기 문신 이의천이 당쟁에 관한 소차를 수록한 역사서.
박직와주의 (樸直窩奏議)
조선후기 문신 이의천이 당쟁에 관한 소차를 수록한 역사서.
조선후기 문인 홍중인이 선조 이후 전개된 당쟁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서술한 역사서.
대백록 (待百錄)
조선후기 문인 홍중인이 선조 이후 전개된 당쟁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서술한 역사서.
조선후기 학자 유병철 등이 『수문록』 3책을요약하여 편찬한 역사서.
산정수문록제요 (刪定隨問錄提要)
조선후기 학자 유병철 등이 『수문록』 3책을요약하여 편찬한 역사서.
조선후기 제19대 왕 숙종과 경종대의 사실(史實)을 기록한 역사서.
숙종시사 (肅宗時事)
조선후기 제19대 왕 숙종과 경종대의 사실(史實)을 기록한 역사서.
조선후기 문신 홍중인이 선조 이후의 당쟁에 대한 사실과 비평 등을 수록한 역사서.
아주잡록 (鵝洲雜錄)
조선후기 문신 홍중인이 선조 이후의 당쟁에 대한 사실과 비평 등을 수록한 역사서.
조선후기 문신 홍중인이 사색당파의 분립과정에 대한 자료를 수록한 역사서.
속육일론 (續六一論)
조선후기 문신 홍중인이 사색당파의 분립과정에 대한 자료를 수록한 역사서.
1682년 김익훈이 허새·유명견 등을 무옥하려 한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정치서.
임계록 (壬癸錄)
1682년 김익훈이 허새·유명견 등을 무옥하려 한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정치서.
조선시대에, 제1대 왕 태조부터 제23대 왕 순조까지를 사실(史實)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조야집요 (朝野輯要)
조선시대에, 제1대 왕 태조부터 제23대 왕 순조까지를 사실(史實)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조선후기 황유첨이 대북파와 소북파의 정쟁에 관해 저술한 정치서. 정쟁기록.
정무록 (丁戊錄)
조선후기 황유첨이 대북파와 소북파의 정쟁에 관해 저술한 정치서. 정쟁기록.
조선후기 의 정치적 대립에 관한 사실을을 기록한 정치서. 당쟁기록.
형감합편 (衡鑑合編)
조선후기 의 정치적 대립에 관한 사실을을 기록한 정치서. 당쟁기록.
조선시대 문신·학자 안방준이 동서당쟁의 기사를 서술한 정치서. 당쟁기록.
혼정편록 (混定編錄)
조선시대 문신·학자 안방준이 동서당쟁의 기사를 서술한 정치서. 당쟁기록.
1680년 허견(許堅)의 역모에 관련된 유혁연(柳赫然)의 옥사이다. 1680년(숙종 5) 4월 5일,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이 역모를 꾸며 복선군 이남을 추대하려 한다는 고변(告變)이 있었다. 관련자들에 대한 추국 과정에서 유혁연이 이천 둔군의 작대와 습조(習操), 호궤(犒饋) 등에 대한 추궁이 있었다. 9월 5일 유혁연은 ‘가까운 종실과 혼인’하였고 ‘둔군을 단속’하였다는 죄목으로 사사되었다. 정약용(丁若鏞)은 유혁연의 희생을 1589년(선조 22)의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비견하였다.
유혁연 옥사 (柳赫然 獄事)
1680년 허견(許堅)의 역모에 관련된 유혁연(柳赫然)의 옥사이다. 1680년(숙종 5) 4월 5일,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이 역모를 꾸며 복선군 이남을 추대하려 한다는 고변(告變)이 있었다. 관련자들에 대한 추국 과정에서 유혁연이 이천 둔군의 작대와 습조(習操), 호궤(犒饋) 등에 대한 추궁이 있었다. 9월 5일 유혁연은 ‘가까운 종실과 혼인’하였고 ‘둔군을 단속’하였다는 죄목으로 사사되었다. 정약용(丁若鏞)은 유혁연의 희생을 1589년(선조 22)의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비견하였다.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문묘출향 (文廟黜享)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