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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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대야성전투 (大耶城戰鬪)
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신라의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딸로, 백제의 대야성전투에서 살해된 왕족.
고타소랑 (古陀炤娘)
신라의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딸로, 백제의 대야성전투에서 살해된 왕족.
신라의 제29대 왕, 태종 무열왕의 사위로, 대야성군주를 역임하여 백제의 침입에 대응하고자 하였으나, 부하 검일의 배신으로 백제군에게 죽임을 당한 장군.
김품석 (金品釋)
신라의 제29대 왕, 태종 무열왕의 사위로, 대야성군주를 역임하여 백제의 침입에 대응하고자 하였으나, 부하 검일의 배신으로 백제군에게 죽임을 당한 장군.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비담의 난 (毗曇의 亂)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 함락 당시의 장수.
용석 (龍石)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 함락 당시의 장수.
삼국시대 일본에 망명한 백제의 유민. 부흥운동가.
억례복류 (憶禮福留)
삼국시대 일본에 망명한 백제의 유민. 부흥운동가.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전투에 참전한 백제의 관리. 장군.
윤충 (允忠)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전투에 참전한 백제의 관리. 장군.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지방관.
죽죽 (竹竹)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지방관.
의자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함락시켜 신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데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당이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공격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의 결사대로 분전했으나 대패하고 항복 후 왕자·대신·장병·백성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다가 며칠 뒤 사망했다.
의자왕 (義慈王)
의자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함락시켜 신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데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당이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공격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의 결사대로 분전했으나 대패하고 항복 후 왕자·대신·장병·백성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다가 며칠 뒤 사망했다.
진춘은 삼국 및 남북국시대 신라의 하서주 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이다. 관등은 이찬으로 진골 출신이다. 진덕왕 3년(649) 8월 도살성에서 치러진 백제와의 전투에 김유신, 죽지, 천존 등과 함께 나아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문무왕 원년(661) 7월에 문훈과 함께 하서주 총관이 되었고, 8년(668) 6월에 죽지와 함께 경정 총관으로 임명되었다. 문무왕 16년(676)에 관직에서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춘 (陳春)
진춘은 삼국 및 남북국시대 신라의 하서주 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이다. 관등은 이찬으로 진골 출신이다. 진덕왕 3년(649) 8월 도살성에서 치러진 백제와의 전투에 김유신, 죽지, 천존 등과 함께 나아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문무왕 원년(661) 7월에 문훈과 함께 하서주 총관이 되었고, 8년(668) 6월에 죽지와 함께 경정 총관으로 임명되었다. 문무왕 16년(676)에 관직에서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