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례복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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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일본에 망명한 백제의 유민. 부흥운동가.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백제부흥운동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달솔(達率)|대산하(大山下)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도학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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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일본에 망명한 백제의 유민. 부흥운동가.

내용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의하면 근초고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관등은 달솔(達率)이다. 백제 멸망 후 여자신(餘自信) 등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하였지만, 663년 가을 백촌강(白村江 : 동진강 하구 혹은 만경강 하구)의 패전으로 인하여 백제부흥군은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게 되었다.

더 이상의 백제부흥운동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됨에 이르러 좌평(佐平) 여자신, 달솔 목소귀자(木素貴子), 곡나진수(谷那晉首) 등과 함께 그 해 9월 하순 저례성(弖禮城 : 위치 미상)에 집결한 뒤 왜로 망명하였다.

백제부흥운동의 종식 이후 신라의 일본열도 침공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야마토(大和)조정은 북구주(北九州)의 대재부(大宰府) 방위를 위하여 달솔 사비복부(四比福夫)와 함께 축자국(筑紫國)에 파견하여 대야성(大野城) 및 연성(椽城)을 축조하게 하였다.

그의 지휘하에 축조된 대야성은 주위 약 5㎞에 달하는 전형적인 백제식 산성으로서, 연성과 함께 대재부의 방위선을 형성하였다. 671년 정월곡나진수·목소귀자·답본춘초(答㶱春初) 등과 함께 야마토조정으로부터 종6위하에 상당하는 대산하(大山下)에 제수되었다.

그는 병법에 높은 식견이 있었다. 그를 시조로 하는 씨성(氏姓)이 이시노무라치(石野連)가 되는데, 후손들은 대체로 전문적인 수공업을 관장하는 수장층이 되었다.

참고문헌

  • - 『일본서기(日本書紀)』

  • -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 - 『日本の歷史』3(井上光貞, 小學館, 1974)

  • -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의 지배조직(支配組織)과 대일본정책(對日本政策)」(이도학, 『백산학보(白山學報)』34,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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