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의자왕 20) 7월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泗沘城)이 함락되고, 의자왕을 비롯한 많은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다. 그해 9월 각종은 이름이 전하지 않은 달솔(達率) 관등의 사람과 함께 간신히 나당연합군의 포위망을 뚫고 백제멸망사실을 일본의 야마토(大和)조정에 알렸다.
각종이 전한 당시 백제의 사정은 “금년 7월 신라가 당나라 사람을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임금과 신하들은 모두 사로잡혔으며 백성들은 거의 흩어 없어져 버렸으므로, 이에 분개한 서부은솔(西部恩率) 귀실복신(鬼室福信)과 달솔(達率) 여자진(餘自進)은 임사기산(任射岐山 : 충청남도 大興의 任存城)과 구마노리성(久麻怒利城 : 지금의 충청남도 公州)에 각각 웅거하면서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 몽둥이로 신라군을 격파한 뒤 무기를 탈취했으며, 백제부흥군이 강성해지자 당나라 군대가 감히 넘보지 못하고 있고 왕성까지 탈환하였다. 백제사람들은 오로지 복신의 신묘한 무략(武略) 덕분에 이미 망한 나라가 부흥하게 되었다고 칭송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가감없이 백제인이 직접 체험한 생생한 전황보고인 관계로 어떤 사료보다도 값진 의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