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흘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때, 돌궐의 고구려 신성 침공 시, 돌궐을 격퇴했다고 전해지는 고구려의 장수.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돌궐의 신성공격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도학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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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때, 돌궐의 고구려 신성 침공 시, 돌궐을 격퇴했다고 전해지는 고구려의 장수.

내용

551년(양원왕 7) 9월 돌궐(突厥)의 군대가 쳐내려와 신성(新城 : 撫順)을 포위하였지만, 이기지 못하고 백암성(白巖城 : 遼陽 東南)으로 옮겨 공격하였다. 이에 고흘은 왕명을 받아 군사 1만을 이끌고 나가 적병 1,000여명을 살획하는 전과를 얻었다.

고흘이 돌궐의 침입을 격퇴하였다는 이 기록은 『삼국사기』고구려본기의 대외관계 기사 중 드물게도 중국 사서(史書)를 옮긴 것이 아닌, 독자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돌궐의 흥기시기를 고려할 때 일단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도 있으나, 촌락조직으로 나누어져 활동하던 돌궐족의 생활양태를 생각할 때 이는 사실일 것이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주서(周書)』

  • - 『수서(隋書)』

  • - 「5∼6세기 동(東)아시아의 국제정세(國際情勢)와 고구려(高句麗)의 대외관계(對外關係)」(노태돈, 『동방학지(東方學志)』 44, 1984)

  • - 「突厥第一帝國におけるGaran號の硏究」(護雅夫, 『古代トルコ民族史硏究』, 1967)

  • - 「三國史記 高句麗本紀の批判」(津田左右吉, 『滿鮮地理歷史報告書』 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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