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목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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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니는 고대 낙랑군에서 공문서를 봉함하기 위하여 묶은 노끈의 이음매에 붙이는 인장을 눌러 찍은 점토덩어리이다. 원래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서 기원하였는데 중국 전국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을 변조하기 쉬운 죽간과 목간을 밀봉하거나 중요한 물품의 보관과 내용물 도난을 막기 위해 이용되었다. 인장을 문서에 날인할 수 있는 종이가 개발되면서 사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시 남안에서 200여 점이 발견되어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로 활용되었다. 해방 이후 재발굴 결과,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기 위하여 날조한 위조품으로 판명되었다.
봉니 (封泥)
봉니는 고대 낙랑군에서 공문서를 봉함하기 위하여 묶은 노끈의 이음매에 붙이는 인장을 눌러 찍은 점토덩어리이다. 원래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서 기원하였는데 중국 전국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을 변조하기 쉬운 죽간과 목간을 밀봉하거나 중요한 물품의 보관과 내용물 도난을 막기 위해 이용되었다. 인장을 문서에 날인할 수 있는 종이가 개발되면서 사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시 남안에서 200여 점이 발견되어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로 활용되었다. 해방 이후 재발굴 결과,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기 위하여 날조한 위조품으로 판명되었다.
삼국시대 백제의 제24대 동성왕 때 후위 수십만 대군의 백제 침공 당시의 장수.
사법명 (沙法名)
삼국시대 백제의 제24대 동성왕 때 후위 수십만 대군의 백제 침공 당시의 장수.
배산성지(盃山城址)는 삼국시대 부산의 배산에 지어진 신라 석축 산성의 터이다. 배산은 해발 고도 250m의 낮은 산이지만, 해운대구와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 부산 시내 일원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배산성의 성곽은 배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토성, 성의 사면과 능선을 아우르는 석축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성 기법이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배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배산성지 (盃山城址)
배산성지(盃山城址)는 삼국시대 부산의 배산에 지어진 신라 석축 산성의 터이다. 배산은 해발 고도 250m의 낮은 산이지만, 해운대구와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 부산 시내 일원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배산성의 성곽은 배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토성, 성의 사면과 능선을 아우르는 석축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성 기법이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배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팔거산성(八莒山城)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축 산정식 산성이다. 성 내부의 목조 집수지에서 간지, 지명, 곡식 등이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목간을 통해 팔거산성은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5세기 후반이며,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거산성 (八莒山城)
팔거산성(八莒山城)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축 산정식 산성이다. 성 내부의 목조 집수지에서 간지, 지명, 곡식 등이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목간을 통해 팔거산성은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5세기 후반이며,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도 3호선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침몰선이다. 이 선박은 전라남도 여수 일대에서 거둔 각종 물자를 싣고 당시 임시수도였던 강화도를 향해 운항하다가 마도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남아 있는 배의 규모는 길이 12m, 너비 8m이며, 전체적인 구조는 밑바닥과 이물, 고물이 모두 평평한 평저선이다. 선박 내부에서는 45점의 도기, 62종의 금속 유물, 빗, 장기알 등 당대인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 출수되었다. 목간을 통해 볼 때 마도 3호선의 침몰 연대는 1265~1268년 사이로 추정된다.
마도 3호선 (馬島 三號船)
마도 3호선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침몰선이다. 이 선박은 전라남도 여수 일대에서 거둔 각종 물자를 싣고 당시 임시수도였던 강화도를 향해 운항하다가 마도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남아 있는 배의 규모는 길이 12m, 너비 8m이며, 전체적인 구조는 밑바닥과 이물, 고물이 모두 평평한 평저선이다. 선박 내부에서는 45점의 도기, 62종의 금속 유물, 빗, 장기알 등 당대인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 출수되었다. 목간을 통해 볼 때 마도 3호선의 침몰 연대는 1265~1268년 사이로 추정된다.
태안 해저유물은 충청남도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해저유물이다. 발굴된 유물은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선박과 청자, 도기, 백자, 곡물, 솥, 청동숟가락, 목간, 죽찰 등의 물품이다. 2007년에 고려청자를 2만 3천여 점을 적재한 태안선이 처음 출수된 이후 2009년~2015년까지 고려시대 선박 3척과 조선시대 선박 1척이 추가로 조사되었다. 그 외에도 태안 마도 해역에서는 분청사기, 백자, 중국 도자기, 닻돌 등 다양한 유물이 출수되었다.
태안 해저유물 (泰安 海底遺物)
태안 해저유물은 충청남도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해저유물이다. 발굴된 유물은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선박과 청자, 도기, 백자, 곡물, 솥, 청동숟가락, 목간, 죽찰 등의 물품이다. 2007년에 고려청자를 2만 3천여 점을 적재한 태안선이 처음 출수된 이후 2009년~2015년까지 고려시대 선박 3척과 조선시대 선박 1척이 추가로 조사되었다. 그 외에도 태안 마도 해역에서는 분청사기, 백자, 중국 도자기, 닻돌 등 다양한 유물이 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