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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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가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942년(태조 25)에 몸소 지은 열 가지 유훈(遺訓).
훈요십조 (訓要十條)
고려 태조가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942년(태조 25)에 몸소 지은 열 가지 유훈(遺訓).
고려의 제3대(재위: 945년~949년) 왕.
정종 (定宗)
고려의 제3대(재위: 945년~949년) 왕.
혜종은 고려 전기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43~945년이며, 태조와 나주 출신의 장화왕후 오씨 소생이다. 박술희의 도움을 받아 921년에 정윤으로 책봉되었으며, 통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혜종은 즉위한 뒤부터 계속해서 박술희와 왕위쟁탈을 노리던 왕규, 그리고 정종까지 서로 대립하면서 불안한 정국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혜종은 자신의 신변 위협까지 느끼다가 병을 얻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혜종 (惠宗)
혜종은 고려 전기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43~945년이며, 태조와 나주 출신의 장화왕후 오씨 소생이다. 박술희의 도움을 받아 921년에 정윤으로 책봉되었으며, 통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혜종은 즉위한 뒤부터 계속해서 박술희와 왕위쟁탈을 노리던 왕규, 그리고 정종까지 서로 대립하면서 불안한 정국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혜종은 자신의 신변 위협까지 느끼다가 병을 얻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태조는 고려 전기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18∼943년이다. 이름은 왕건으로 궁예의 휘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시중이 되었다. 궁예의 실정이 거듭되자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새 왕조를 열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문란해진 토지제도 정비와 조세 경감으로 민심을 수습하였으며 호족들과는 정략결혼으로 연대를 강화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신라에 대해 친화정책을 펴는 한편 후백제에는 화전 양면 전술로 대응하여 마침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하였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장려하였고 왕실의 헌장으로 자손들에게 「훈요십조」를 남겼다.
태조 (太祖)
태조는 고려 전기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18∼943년이다. 이름은 왕건으로 궁예의 휘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시중이 되었다. 궁예의 실정이 거듭되자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새 왕조를 열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문란해진 토지제도 정비와 조세 경감으로 민심을 수습하였으며 호족들과는 정략결혼으로 연대를 강화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신라에 대해 친화정책을 펴는 한편 후백제에는 화전 양면 전술로 대응하여 마침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하였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장려하였고 왕실의 헌장으로 자손들에게 「훈요십조」를 남겼다.